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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인생은 컬러, 흑백 영화로 살지 마라”
2008년 5월 1일(목) 8:00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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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딸과 내 자신에게 정말 해 주고 싶은 말은 ‘네 자신을 죽도록 사랑하라’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창간 20돌을 기념해 열린 ‘찾아가는 한겨레 특강’의 첫 강연이 30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첫 강연자인 소설가 공지영씨는 ‘치유, 평화, 그리고 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딸에게 얘기하듯 편하게 얘기하겠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300여명의 학생들은 공씨의 ‘사랑학 특강’에 숨을 죽였다. 특강이라는 딱딱한 형식을 빌렸지만, 공씨와 학생들의 대화는 엄마와 딸, 이모와 조카가 수다를 떠는 것처럼 격이 없었다.
공씨는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20대 시절에 대해 “사랑해 본 적도 없었고, 사랑 해 본 적이 없으니 이별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제가 20대 때 반독재, 식민지, 민주화 이런 거창한 이야기만 하고 살았다. 연애 문제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은 왕따를 시킬 정도로 한심하게 봤다. 이제 서른이 넘은 후에 보니 대단히 후회스럽다.”
그렇다면 공씨가 나이 서른 먹어 늦 공부로 터득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는 초롱초롱한 여대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여성들에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사랑은 희생하거나 희생당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희생을 허락해야 할 이성을 고르는 기준은 좀 독특하다. 공씨는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느냐”는 딸의 질문에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우선 만날 때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잘 보고 헤어질 때 스토킹을 할 남자는 아닌지, 깽판 부릴 남자는 아닌지 잘 봐야 한다. 그런 다음 최선을 다해 만나라. 비단 남자친구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끝은 항상 중요하다. 만남은 항상 계획된 것이 아니다.”
공씨는 이성에 대한 사랑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네 외모가 어떻든 체중이 어떻든, 네가 너 자신을 잘 데리고 다니면서 잘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네 평생의 숙제다.”
공씨의 수다는 사랑학을 넘어 20대를 위한 삶의 자세로 옮겨갔다. 그는 무엇보다 행복하려면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돈은 참 중요하다. 그러나 무서운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항상 (인생에서) 1번의 자리에 오르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돈이 1번에 오르는 순간 다른 것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돈을 무시할 수 없지만, 절대로 1번 자리에 가게 만들면 안 된다. 그 순간 내 인생은 매우 황폐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씨는 같은 맥락에서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는 “세대를 규정짓는 말로 돈은 너무 가혹하다”며 “돈과 안정적인 삶만 추구하는 것이 진짜 88만원짜리 삶”이라고 꼬집었다.
공씨는 20대에 만연된 불안과 그로 인한 안정 희구 성향에 대해서는 일침을 가했다. 그는 “불안은 평생 안고 가는 것”이라며 “불안해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불안해하는 이중의 불안만 아니라면 자연히 치유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씨는 ‘실패할 수 있는 특권’을 강조하며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마지막으로 주문했다.
“지금 실패하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다. 사랑에도 꼭 실패해 봐야 한다. 취직에도 실패해 봐야 한다. 그래서 어느 날 하염없이 배낭 매고 입 딱 다물고 해 보지 않으면 여러분 삶은 이제 흑백영화로 바뀌는 것이다. 영상은 분명히 돌아가는데 다채롭지 않다. 보고 느끼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은 88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88만원짜리다.”
강연은 자리를 뜨는 사람 없이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을 넘겨 계속됐다. 강연이 끝나고 공씨의 사인을 받기 위해 2백여명의 학생들이 몰려 강연장 문 쪽이 혼잡을 빚기도 했다.
한편, ‘찾아가는 한겨레 특강’은 <한겨레> 창간 20돌을 맞아 지면을 장식하는 다양한 필진들이 직접 독자들을 찾아가는 쌍방향 강연이다. 이 강연은 ‘젊은이여 드높은 기개로 세상을 품어라’라는 주제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박미라 작가, 하종강 한울노동연구소장, 성한용 <한겨레> 정치부 선임기자 등 15명의 강연자가 나서며, 개성 있는 소주제로 특강을 이끌 예정이다.
서울·대구·부산 지역의 30개 대학과 전교조 등을 상대로 45개 강좌가 예정돼 있으며, 대학 동아리·시민단체 등 150명 이상의 인원이 청중과 강연장을 확보하면 강연을 신청할 수 있다. 이날 공지영 작가와 같은 시간대에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 열린 정남구 <한겨레> 경제부 기자의 ‘한국경제 어디에 서 있는가’ 강연을 시작으로 6월 중순까지 진행된다. 아래는 공지영 작가의 특강 전문이다. 하어영 박종찬 기자 haha@hani.co.kr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치유, 평화 그리고 문학
공지영 작가 찾아가는 한겨레 특강 1회 -이화여대 편
급하게 알렸다고 들었는데 귀한 시간에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보자. 오늘 제목이 매우 거창한데, 이런 말 잘 모르고, 작은 이야기들로 편하게 만남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더구나 오늘 여자들만 있는 대학이라 각별하게 하고 싶은 말들도 많이 생각이 난다. 시간이 많으니까 제가 먼저 이야기하고 여러분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져 봤으면 좋겠다.
사실 여러분에게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제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였다면 이번에 이소연씨가 우주가서 본 별이 이러쿵저러쿵 할 것이고,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었으면 동물에 대해 말해 줄텐데, 소설이라는게 살면서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니까, 오늘 잘못하면 제 삶에 대한 수사가 될 수도 있고 그럴 것 같다. 그래서 가급적 안 하려고 하는데 요즘 몇 번 하다 보니까 의외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는게 상당히 재미있는 것 같다. 제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딸 같은 여러분들 만나다 보니까 부담이 덜 한 모양이다.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제가 그 책에서 쓰고자 했던 이야기들, 뒷이야기들을 해 보고 싶다. 제가 어린 시절을 거의 신촌일대에서 자랐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이미 그린하우스에서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이대생을 봤었고, 고등학교 때는 한 잔의 맥주 정도를 마실 정도 였기 때문에 매우 익숙하다. 오늘 오다 보니까 남자분들이 걸어다니고 있더라. 신촌 옆에 싼 맥주집이 많아가지고 그쪽으로 많이 다녔는데, 이대생들하고 남학생들이 서로 스쳐 지나갔던 기억들이 났다. 그런데 요즘은 남학생들도 많이 다니더라. 이대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땐 연애 문제 고민하면 왕따였다”
제가 여러분 만할 때, 되게 거창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살았다. 반독재, 식민지, 민주화 이런 이야기를 안 하면 지성인 아닌 것 같아서 항상 그런 말들로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연애 문제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은 우리가 왕따를 시킬 정도로 한심하게 봤다. 엄마 문제 아빠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사소한 일로 고민하느냐고 구박했다. 그리고 이제 다들 서른이 넘은 후에 보니까 대단히 후회스러웠다. 물론 반독재도 중요하지만 일상에 대해 생각을 안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저는 여러분 만할 때 사랑도 해 본적 없었고, 사랑 해 본적이 없으니 이별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위 어머니 세대를 보자. 어떤 시절이었냐면, 동네에서 남자들하고 이야기하는 것 들키기만 하면 바로 결혼해야 된다. 제 시절에는 캠퍼스에서 손잡고 다니는 것 들키면 바로 결혼해야 된다. 구설수 오르느니 결혼하는 게 나았던 것이다. 그 정도로 남녀 간의 교제도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 우리 엄마 세대들은 우리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우리 엄마 세대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성취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분들도 일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전문직이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억척스럽게 일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 회식과 같은 사회생활이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회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에게도 배울 수 없었고 친구에게서도 배울 수 없어서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아버지들은 항상 가부장적으로 하고 그래도 엄마들은 다소곳이 아침 차려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것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자들이 일도 하고 사회생활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어이가 없는 거다. 엄마들은 딸들에게 우리같이 살지 말라고 하고, 아빠들은 아들들에게 우리처럼 살라고 하고. 남녀 간에 항상 불협화음이 많은 세대였다. ‘나는 네게 다가갈 것이다’ 라는 책은 그런 이야기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로 내가 딸하고도 얘기 많이 한다. 그런데 한 편으로 내가 성공적으로 살지 못했는데 어떻게 딸에게 말을 해 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이 할 말이 더 많겠는가 아니면 여러 번 조난당하고 실패한 사람이 할 말이 많겠는가.
“이십대에는 정말 사랑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이십대에는 정말 사랑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물론 책도 중요하지만 실전이 중요한 그런 세대이다. 삼십대 가서 실전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뭐라고 할까? 주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이십대 때 이러한 실전을 많이 해 봐야 한다.
딸이 가끔 묻는다. 엄마, 어떤 남자 만나야 하는지 열 자 이내로 말 해 줘. 그러면 좋은 대학 다니고 성실하고 우리 집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자기 일 제끼고 니 일 챙기는 사람 만나라 그런 말을 하고 싶은데, 다른 얘기를 해 준다. 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 딸이 충격을 받더라. 이게 정말 중요한데, 비단 남자친구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끝은 항상 중요하다. 우선 만날 때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잘 보고 헤어질 때 스토킹을 할 남자 아닌지, 깽판 부릴 남자 아닌지 잘 봐야 한다. 헤어질 때도 점잖게 잘 할 것 같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면 그 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만나면 되는 것이다. 만남은 항상 계획된 것이 아니다. 일 년 전에 여기서 나랑 만나기로 한 사람 있는가? 한국에서 들어왔고 여러분들 이대로 왔고 거슬러 올라가면 수 천만 가지의 인연으로 우리가 여기 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만남은 어느 정도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그러나 헤어지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다. 헤어지는 것 자체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지만 어떻게 헤어지냐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다. 우리가 여기서 나가서 어떤 남자를 만날지는 모르는 거다. 하지만 헤어짐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규정하고 훈련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총체가 드러나는 것이고 우리의 노력으로 그것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남들에게는 잘 헤어지는 사람이었나 이런 생각을 해 보니 그런 이야기를 괜히 한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잘 못 헤어지는 사람이다. 사실 내 자신이 나에게 잘 헤어져 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 우리 자신하고도 또 헤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죽을 때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한다. 혼자 죽는 것이다. 아마도 내 육체도 놓고 가는 것이다. 이런 이별도 장기적으로 준비를 해 봐야 하는 것이다. 정말 잘 헤어지는 사람들은 사실 헤어질 일도 없다. 만날 때 잘 해주는 사람은 참 많다. 그러나 헤어질 때 잘 헤어지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니 그 주변사람에게 물어보라. 헤어질 때 어떻게 했는지.
“니 자신을 죽도록 사랑해라”
여기 오기 전에 어떤 잡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저보고 얼굴이 굉장히 밝아지고 예뻐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내가 아까 우리 딸에게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고 어쩌고 이런 말을 했지만 사실 딸과 내 자신에게 정말 해 주고 싶은 말은 니 자신을 죽도록 사랑해라 라는 말이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 요즘 애들 다들 지 잘난 줄 아는데 그런 말을 해 주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로 숭고한 일이다. 여러분들 동생을 사랑하는데 동생이 항상 아이스크림만 먹고 있으면 잘 한다 하면서 그걸 계속 먹이나? 아닐 것이다. 넌지시 이야기한다. 그만 먹고 나가서 걸어보는 게 어떻겠니, 하고. 그리고 항상 술만 퍼먹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그만 술을 먹고 나가보라고 할 것이다. 계속 술만 먹는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과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임상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에게 종이 한 장을 주고 가장 중요한 말을 써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크게 두 부류로 나뉘더라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눠주고 시키면 뭐라고 하겠는가? 돈?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한 부류는 ‘나의 자존심’이라고 썼고 다른 한 부류는 ‘나’라고 썼다고 한다. 이 분이 오래 연구한 결과 놀라운 것을 발견했는데 나의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것과 나를 중요시하는 것은 대단히 큰 차이가 있더라는 것이다. 나의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대개 위선자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나의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시킬 수가 있더라는 것이다. 내가 오늘 내 친구랑 싸웠는데 사실 걔를 굉장히 좋아한다. 근데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하겠다. 나는 저 사람과 화해하고 잘 지내길 원하지만 내 자존심은 그것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을 잠깐 억누르고 화해를 하는 것이다.
그때 그 글을 읽고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왔다. 나 스스로도 많은 병, 이를테면 공주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 항상 자존심 상한다 이런 말을 많이 해 왔다. 그동안의 일들을 나 자신과 자존심으로 나누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제가 제 딸이나 누구에게 이야기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네 외모가 어떻든 체중이 어떻든 너는 너 자신을 너무나도 잘 보살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네 엄마도 못하고 너 자신밖에 없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더 먹고 싶지만 사실 숟가락을 놔야 할 때도 있는 것이고 자존심 상하더라도 친구에게 먼저 화해를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네가 너 자신을 잘 데리고 다니면서 잘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네 평생의 숙제다. 이런 말을 한다.
“명품족이 부러운가? 차라리 명상을 하거나 독서를 해라”
제가 이 사실을 좀 더 어렸을 때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여러분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싶어 이런 말을 해 본다. 외모라는 것도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형식과 내면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준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제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명품 백을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제가 나가서 보니까 그런 백들이 70만원 정도 하더라. 비싼 것은 천만원도 하고. 지금 제가 걸치고 있는 옷들을 가격을 다 합치면 12만원 정도 한다. 저는 살면서 한 번도 10만원 넘는 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 근데 주변에 보면 씨이오나 전문직이나 많다. 근데 그 사람들 보면 비싼 옷 입고 다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항상 자랑하는 것을 보면 이거 어디서 2만 5천원에 샀다 이런 것이 자랑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명품이라는 것이 대체 뭘까. 저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특히 여성에게. 제가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의 결과를 산출해 봤더니 명품을 산다는 것이 일종의 자기 성취였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재벌 딸들도 아니고 팍팍 샀겠는가? 모으고 모아서 겨우 하나 사고 그랬을 것이다. 거기서 오는 성취인 것이다. 그래서 제가 만난 전문직 여성들은 명품이니 뭐니 신경을 안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분들이 돈도 많고 그렇다. 그런데 그런 것을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이다. 짬이 나면 명상을 하거나 독서를 하지 그런 것이 신제품이 뭐가 나왔나 알아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명품을 통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젊다. 그래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히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러분 몸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투자하지 말라. 소매치기가 와서 찢어버리고 갈 수 있는 것에는 투자하지 말라. 헬스클럽이나 책이나 공부나 이런 것은 누가 뺏어갈 수 없지 않은가. 여러분은 이런 곳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아까 제가 만난 그 씨이오 중에 어떤 분이 있다. 제가 깜짝 놀랐다. 유명한 사람이라 해서 소개를 받았는데 깜짝 놀랐다. 왜 놀랐느냐? 너무 못생겨서다. 나는 여자 외모에 그렇게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다. 근데 진짜 그렇게 못생긴 여자는 처음이었다. 말은 아주 조리 있게 잘 하는 분이었다. 이후 잊어버리고 그 분이 성공하고 잘 지낸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분을 다시 만났는데 눈이 부셨다. 너무 예뻐진 것이다. 칼을 댄 것도 아니다. 안에서 어떤 광채가 나는 것이다. 그 분이 50대 초반이신데 제가 그때 좀 생각을 하게 됐다.
제가 여러분 나이 때는 70넘은 할머니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러분이 제 나이쯤 되면 100살까지 사는 사람, 심심치 않게 나올 것이다. 여러분이 좀 더 나이 먹으면 여러분들 120세까지 살아 내야 할 수도 있다. 외모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근데 30이 넘어가고 40이 넘어가면 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
성형한 귀부인은 아름다운가?
한 가지 더 이야기하겠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연대 캠퍼스 걸어 다닐 때 남학생들이 데이트신청 했겠는가 안 했겠는가? 안 했다. 주로 술집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4년 통틀어 세 명이 다가온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을 만나게 됐다. 보니까 키도 나보다 작고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왜 나한테는 저런 애만 오는 거야 생각했다. 근데 아마 그 친구는 깊은 상처를 받았나 보더라. 그런데 어느 날 여러분이 잘 아는 어느 포털사이트 사장이 나를 알고 매우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분이 나한테 딱지맞은 적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 리가 없다고 하여 만나봤다. 그런데 만나보니 그 친구다. 키는 그대로지만 너무 멋있게 변한 것이다. 엄청 못생기고 두꺼운 안경 끼고 그랬는데 지금 보니 안경은 그대로였는데 너무 멋있게 변한 것이다. 그때 제가 생각하게 됐다. 쟤는 왜 저렇게 멋있어 졌을까? 생각해보니까 그 친구가 삶을 매우 잘 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 아니다.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여자들한테 딱지도 맞고 이 직업 저 직업 전전하면서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을 잘 끌어안고 이렇게 된 그 친구를 보면서 야, 이 미모라는 것이 장난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다.
학교 다니면서 엄청 예뻤던 친구들이 못생기게 된 친구들도 있고 못생겼는데 귀부인처럼 된 친구도 있다. 재벌 총수들 잘 생겼는가? 그 부인들 예쁜가? 난 그 성형 많이 한 나이 먹은 아줌마들 보면 그걸 예쁜 것이라고 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되더라. 얼마나 좋은 것 먹고 잘 지내겠는가? 그런데 아름답지 않다. 여러분들 도 많이 닦은 분들이나 고매한 종교인들 보면 어떤가? 아름답다. 맑고 빛난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다. 왜 저 사람들은 아름다워지고 왜 저 사람들은 좋은 것을 먹고 온갖 좋은 것들을 했을 텐데 왜 아름답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 제 미모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한 것이다.
욕심 부리지 않는 것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남들을 위해서 배려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들 미모는 내면에서 발화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이것들을 붙잡고 여러분들 살아가야 한다. 뭐 성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친구들의 얼굴들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빛나지는 것들을 캐치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더 테레사와 다이애나 누가 더 행복했을까?
길을 다니다보면 사람들이 물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그렇게 대답한다. 사랑이라고. 아까 그 미모 얘기에서 좀 더 비약을 해 보자면 마더 테레사가 사실 얼마나 못생겼는가? 키도 150이 안 되고 쭈그렁한데 그 양반이 가지는 그 품위와 빛을 제가 한 번 멀리서나마 책을 통해서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 분이 처음 빈민 활동을 시작할 때 초기 얘기 다 알겠지만 한 번 하면 어느 날 이 분이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뭇가지 같은 것을 지고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의아해서 그게 뭐냐고 했더니 얘가 죽어가고 있길래 왔는데 여러분이 살려주지 않으면 들판에 던져버리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봤더니 나뭇가지가 아니라 앙상하게 마른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물론 결국 죽었지만 그 아이를 수녀님이 돌봐주고 하니까 그 아이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즘 인도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빈부격차 심하고 아직도 빈민이 많다고 한다. 빈민이 쓰러지면 밤에 쥐들이 와서 그것을 파먹는다고 한다. 그것을 물리칠 기운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마지막에 꼭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수녀님 인생을 사는 동안에 너무 행복했고 저는 행복하게 죽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 것을 보고 제가 많은 생각을 했다.
우연히 마더테레사와 같은 날에 죽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도 매우 유명한 사람인데, 저랑 같은 나이인 다이애나라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의 결혼식이 전세계에 생방송 됐다. 비단 드레스를 입고 호박같은 마차를 타고 왕자에게 시집을 가고 있었다. 그것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 여자는 가진 것도 없었다. 21살짜리가 영국 왕자에게 시집을 가는데 매우 부러웠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십이 흘러나오는데 그 여자가 우울증이라느니 자살을 시도했다느니 그런 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여자가 이혼을 했는데 영국 왕실의 근엄함과 이 여자의 자유로운 기질이 계속 부딛쳤던 것이다. 결국 이 여자는 교통사고로 마더데레사와 같은 날에 죽었다. 그 여자도 나중에 좋은 일 많이 했고 고군분투 끝에 많은 것들을 얻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마더데레사처럼 살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같은 날에 죽음으로써 저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저 두 사람의 차이가 뭘까. 그 쭈글쭈글한 마더데레사는 행복해 보이고 다이애나는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돈 분명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내 인생 1번의 가치인가?
분명히 돈 중요하다. 그래서 한 번은 정말로 질문을 해 봤다. 100억 가진 사람에게 당신이 가진 것이 돈입니까 숫자입니까. 그랬더니 지금 현재로는 숫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하나 더 물어봤다. 100억 가진 사람과 200억 가진 사람이 무슨 차이냐고 하니까 숫자가 차이난다고 하더라. 중요한 얘기다. 돈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서운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1번의 자리에 오르고 싶게 만드는 그런 것 같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있는데 돈만은 항상 배타적으로 오는 것 같다. 돈을 1번에 오는 순간 다른 것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물론 돈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절대로 1번 자리에 가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내 인생은 매우 황폐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 꿈 많을 것이다. 이번에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라는 책을 내면서 충격을 받았는데 첫째는 제 책 중에서 가장 빠르게 많이 팔려나갔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공지영하고 상관없이 책 제목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 딸이 여러분하고 비슷한 세대다. 이 세상에 많은 세대들이 있지만 누구도 돈의 액수를 가지고 그 젊은이들을 규정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경제학자가 한 번 규정하고 나서 여러분들은 드디어 무슨 세대가 됐는가? 88만원 세대다. 이제 그런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사인회를 가면 학생들이 그런다. 이 책 제목 그대로 책에 써 달라는 것이다. 얼굴을 보니까 애절하다. 여러분 보면 항상 불쌍하다. 우리 부모들은 항상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지 부자 되라고 한 적 없었다. 근데 여러분들 요즘 내가 서점가서 보면 20대에 1억 버는 방법 10대에 부자가 된 누구 이렇게 하면 성공한가 저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런 것들을 보고 너무 끔찍했다. 여러분들이 이제 내가 의탁해야 하는 세대다. 여러분들이 딱 나의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세대인데, 여러분에게 좋은 말을 해서 잘 살게 하지 않으면 나의 노후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무슨 박애적이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너무 가슴 아프다”
제가 인터넷에 성공한 사람의 동영상을 봤다. 물론 그 사람은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뭘 성공한 사람인가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들 성공이란 무엇인가? 제 생각에 성공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그것을 굉장히 잘 하게 됐고 남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안철수씨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저는 그 모 당의 비례대표 1번, 그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돈 번 것은 뭐 그래 잘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돈 벌어서 누가 도움을 받았는가?
여러분이 원하는 성공이라는 것이 정말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사는 것만을 의미한다면 여러분 중에 2%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실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함께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 지고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럼 그 사람들은 사실 2%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에게 성공이라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여러분들이 그토록 원하는 안정. 여러분 같은 세대는 처음 봤다. 어떻게 20대가 안정을 찾지? 우리 땐 웬만한 대학 나오면 취업률 100%였다. 원하면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삼성, 엘지, 이런 기업은 물론이고 은행 보험사 증권 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다 정년제 보장돼 있고 그랬다. 그런데 졸업한지 12년 만에, 97년 아이엠에프가 터지면서 이런 모든 신화가 무너지게 됐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안정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교사들 재임용 언제 강화될지 모르고 언제 그 고시가 재고시 이런 식으로 돼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20대 때 정말로 해야 되는 것은 실패를 해 봐야 한다. 실패를 해 보지 않으면 안정될 수 없다.
내 자랑 좀 하겠다. 대학 때 주로 술집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패거리 친구들이랑 항상 놀았는데 문학을 하고 친했는데 그 친구들한테 항상 구박받으면서도 왜 항상 이들과 붙어다녔냐 하면 이 친구들이 전국 문학상을 휩쓸었었다. 전국 규모로 대학에서 모집을 해서 상금이 엄청 많았다. 친구들이 그래서 항상 아르바이트 안 하고 그런 것들에 매진을 했다. 늘 그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상금 받으면 돼지갈비라도 하나 얻어먹고 또 부러워서 항상 따라다녔다. 그 친구들은 이미 그때 신춘문예에 응모도 하고 그랬다. 나도 그때 응모해서 항상 많이 떨어지고 그랬다. 제가 지금도 어디 심사위원가면 꼭 그런 말을 써 준다. 여기 이 심사위원들도 많이 떨어진 사람들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제가 젊었을 때 만일 상 많이 타고 그랬으면 큰일 났을 것 같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생명력이 없어졌을 것 같다. 모든 힘이 딱딱하고 센 것들은 생명력이 없는 것들이다. 항상 부드럽고 상처도 잘 받고 이런 것들이 생명의 본질이다. 만일 그때 성공하고 그랬다면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런 세월을 못 겪었을 것이고 강하고 겸손하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20대에 실패하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다”
정말로 20대들에게 제 딸까지 포함해서 당부하고 싶다. 지금 실패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감당이 힘들다. 나의 나이, 후배들 얼굴, 지금이야말로 거꾸러지고 실패하고 실연당해서 길거리에서 다리 뻗고 울어도 봐야 하고 이런 것들을 지금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나중에 너무나 불쌍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고시 같은 것들 연령제한 직전까지 다른 것들을 이것저것 해 보기 바란다. 처음부터 방구석에서 오랜 세월동안 그런 준비만 하고 되고 나서 놀아야지 그러면 안 된다. 여러분 교사가 되기 위해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판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 아니다. 여러분 멀쩡한 사지육신을 이 세상에서 만끽하고 누리라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꼭 실패해 봐야 한다. 사랑에도 꼭 실패해 봐야 한다. 취직에도 실패해 봐야 한다. 하고 싶었던 일에도 좌절해 보고. 그래서 어느 날 하염없이 배낭 매고 입 딱 다물고 해 보지 않으면 여러분 삶은 이제 흑백영화로 바뀌는 것이다. 영상은 분명히 돌아가는데 다채롭지 않고 그런 것이다.
여러분 초록의 종류도 참 다채롭다. 하늘빛도 항상 다르다.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은 88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을 다 벌어도 88만원짜리밖에 안 된다. 실패해도 괜찮다. 여러분들 시간이 많다. 요즘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 아 이제 겨우 46살밖에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한다. 여러분들 이 나이에 성공하면 딱딱해진다. 그것은 성공이 아니다.
내가 너무 수다를 많이 떤 것 같다. 여러분들한테 많이 좋은 얘기를 해 준 것은 아니지만 딸들 같고 그래서 노파심에 잔소리를 해 댔는데 어땠는지 모르겠다. 질문을 받겠다.
공지영 작가 학생들과 일문일답
“여전히 촌스러운 당신들, 그래도 정말로 예쁘다”
학생 1: 지금까지 좋은 얘기 감사하다. 좋은 얘기들만 해 주셨으니까 쓴 소리 같은 것도 좀 부탁한다.
공지영: 역시 이대생이 수준이 높은 것 같다. 쓴 소리 할 것 없다. 진심이건대 여러분들 정말로 예쁘다. 우리 세대와 차이점 보면 첫째는 키들이 커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여전히 촌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예쁘다는 것이다. 쓴 소리 할 것이 없고, 여러분들 잘 하고 있다. 여기 공지영 강의 들으러 온 친구들이면 좋은 친구들 아닌가?
학생 2(김윤희·22): 저도 그렇고 친구들도 이유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작가님은 젊었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공지영: 제가 대학 4학년 2학기 때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때부터 담배피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부모님이 등록금 줘서 살았는데 이제부터 내가 돈 벌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불안했다. 사회에 나가서 학생이냐고 물어봤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불안했다. 신촌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많이 지나가고 내가 내 일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그러면서 그것이 해소됐던 것 같다. 그때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어떻게든 자립하자. 돈을 좀 적게 받더라도 그것이 발전 가능성이 있다면. 그래서 그 불안을 가지고 가면서 살다 보니까 이제 서서히 그런 불안이 사라졌다. 지금은 이제 이렇게 중년의 여성이 됐는데, 불안해하는 것을 불안해 하지마라.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살인마부터 성녀까지, 내 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있다”
학생 3: 심리를 전공하고 있는데 심리 수업을 할 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 책의 이야기가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책도 한두 번 읽어보고 그랬는데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상담사 이상으로 잘 하는 것 같다.
공지영: 자기를 잘 보면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있다. 희대의 살인마부터 성녀까지 다 들어있다. 저는 사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쓰고 사형수들 만나보면서도 그런 생각 많이 했는데 내 안에 수많은 악마부터 천사까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하나 스킬이 있다면 제가 한 2년 반 정도 정신분석을 받았었다. 심리 관련해서 석사 논문 논문 정도 쓸 만큼 공부도 했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책을 쓸 때는 그런 의식을 안 했었는데 의외다.
학생 4(주소영·23): 저희 모녀가 작가님 모녀보다 한 살씩 많다. 책을 보면 작가님은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질 때마다 조금씩 안타까움이 많아지는 것 같다. 지금의 그 주부로서의 모습 말고도 많은 길이 있었을 것 같은데 희생한 것이다. 그런데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든가 그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우리 어머니 같은 그런 분들 많을 것 같은데 지금 나이가 40대 중후반일텐데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어떻게 하면 사라질지 모르겠다.
“힘들어 하는 어머니께 봉사활동을 권해봐라”
공지영: 사실 엄마도 남이기 때문에 나도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식에게도 해 줄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다. 저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도 전문직 일을 하셨다가 사정으로 인해 일을 놓으셔야 했다. 어머니가 항상 저희 자매에게 말을 하셨다. 절대로 돈을 벌어라. 저는 그게 어렸을 때부터 귀에 많이 익었다. 어머니가 우리 자식들을 보람 있어 하셨지만 언젠가 자식들 인생에 대해 회한으로 돌아보는 것을 봤다. 나는 그래서 어머니같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들 앞으로 여성으로서 결혼하고 애 낳고 이런 일은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힘든 일이다. 매일 매일이 전투상황이고 지금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도 아직도 잔재가 남아있다. 집안일에 시달려야 하는. 그런데 여러분 결혼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권하기가 힘들다. 저 힘든 세월을 어떻게 거칠까. 그럼 젊은 여성들이 묻는다. 혼자 지내면 어떨까요. 물론 그래도 된다. 물론 그건 편하고 고생 안하고 좋다. 근데 그게 좀 공허하달까, 그래서 그게 뭔데? 편하면 다야? 이런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일하는 여성들이 잘 살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하는 것은 맞다.
“사랑은 희생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가 아주 친한 친구 다섯 명이랑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 하고 독신인 친구 한 명만 일을 하고 나머지 넷은 주부인데 다들 힘들어한다. 제가 구치소 가서 보면 깜짝 놀랐다. 십 몇 년째 봉사를 하고 있는데 그 분들이 성취감에 만족하고 있는 것을 봤다. 그야말로 봉사인데 그 분들의 얼굴이 정말 밝고 보람도 있고 그렇더라. 만일 하나 권유해 드릴만한 것이 있다면 그런 봉사활동 같은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봉사활동할 수 있는 곳 많다.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찾아서 어머니들에게 권해드리면 어떨까 한다.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는 그런 곳에 가면 좋을 것 같다.
잔소리 하나만 더 하겠다. 여성들에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사랑은 희생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안 된다. 여러분에게 말해주는데 차라리 이기적으로 굴어라. 희생당하는 것은 힘이 없어서 상처를 극복할 능력도 없어서 망가지게 된다. 여성은 특히 그렇다. 저 또한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인데. 엄마가 나로 하여금 오빠나 아버지한테 밥 차려주라고 하면 저는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갔다. 사지 멀쩡하고 나보다 힘도 센데 왜 내가 차려줘야 하나 생각했다. 희생이라는 것은 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예수 같은 사람이 희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머리채 붙잡혀서 막 싫다고 하면서 희생되지는 않았지 않은가? 그것은 희생당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집 안에서 혹시 내가 희생해야 되는 것이 아닌지 강박관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넉넉하고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여자니까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 망치는 길이다.
학생 5: 저는 남몰래 작가를 꿈꾸고 있는 사람이다. 공지영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가치관이 변하고 생활이 변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작가님께서도 제 또래였을 때 제가 작가님한테 받은 감동처럼 삶의 큰 전환점을 만들어준 책이나 사건이 있으면 말해 달라.
공지영: 그 질문이 항상 어렵다. 굳이 꼽자면 딱 여러분 나이 때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가 많이 팔렸던 때인데, 그 때 그 분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 사건을 처리하는 묘사들 그래서 진짜 좋아했었다. 만일 그때 이런 사인회가 있고 그랬다면 도시락 싸 들고 따라다녔을 것이다. 나중에 작가가 되고 나서 몇 번 뵈었는데 요즘 많이 아프시다고 한다. 그때 토지를 읽으면서 아 소설이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세세하게 다룰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동을 받았었다.
“어느 날 삶이 얘, 이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었잖아 하고 말을 걸 것이다”
학생 6(이정은·20): 오늘 좋은 얘기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하다. 주변에 있는 분들한테 항상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러 공부를 하면서 도전하는 것에 대해 겁먹을 때가 있다. 선생님도 원하는 것에 대해서 방황을 하거나 그래서 공허해 보이는 자신을 볼 때가 있으셨는지?
공지영: 당연히 많다. 어느 정도였냐면 엠티 갈 때 항상 신나 해 놓고 엠티 갈 때 아침에는 아파서 못갔다.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 같다. 지금도 여행이 두렵다. 독일에 우화가 하나 있다. 씨앗 저장고에 누워있던 씨앗이, 씨앗 저장고는 따뜻하고 친구도 많고 좋았는데 어느 날 확 들려 가더니 축축하고 어둡고 아무도 없는 땅 속에 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원망을 했는데, 드디어 몸이 갈라지고 뭐가 나오면서 괴로워했는데 그것이 싹이 된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네가 태어난 이유는 그 따뜻한 저장고 안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둡고 힘들어도 거쳐서 싹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열매도 줄 수 있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걸 통과해 나가야 한다. 하기 싫은 마음이 막 생길 때가 있다. 그때 생각한다. 이것이 굉장히 좋은 일을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마귀가 나를 막는구나. 더욱 빨리 가야지, 생각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하는 것이다.
일단 해야 될 것은 빨리 하는 것이 좋다. 이왕 졸업할 것이면 빨리 졸업하고 고민이 된다면 일단 돈부터 벌고 이런 것이 좋은 것 같다. 중요한 얘기인데 고민이 참 멋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이 되는 사람들을 제 주변에서 300명 정도 봤다. 따야 할 것은 빨리 따고 일단 자기가 자립할 수 있는 돈을 벌어가면서 고민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자신이 생활하고 유리된, 그런 공간에 자꾸 놔두면 꿈조차도 붕붕 뜬다. 사회 나가서 첫 월급 딱 받아보면 눈물도 나고 그러면서 사회에 근접해 진다. 정신과 의사들은 리얼리티에 접근했을 때가 가장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빨리 졸업하고 빨리 돈 벌고 살기 시작하면 어느 날 삶이 얘, 이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었잖아 하고 말을 걸 것이다. 그럴 때는 쉬어도 된다. 쉬면서 준비하면 된다. 게다가 하나도 안 늦었다. 26살이면 어리다. 여러분 앞으로 수십 년씩 남아있으니까 빨리 해야 할 것은 하고 나중에 누군가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면 그때는 다시 시작해도 된다. 정리=취재·영상팀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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