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밴드 - 가을 우체국 앞에서





  로커 윤도현을 중심으로 결성된 4인조 밴드.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국민적인 스타로 발돋움하여, 한국 최고의 인기 록밴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보다는 주로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며 정치-사회적인 사안에 관해서도 적극적인 발언과 행동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도현밴드는 본래 솔로 가수이던 윤도현의 백밴드 형태로 처음 구성되었다. 1집 [윤도현 1]을 내고 나서 열악한 사운드에 불만을 느낀 윤도현이 밴드 음악을 펼치기 위해 결성한 것이 윤도현 밴드의 시작이다. 이렇게 해서 1967년 생의 기타리스트이자 뛰어난 작곡가인 유병열과 버클리 음대 출신의 강호정, 노래동인 종이연 시절부터 윤도현과 친분을 쌓은 엄태환, 그리고 밴드 ‘하늘소리’ 출신의 김진원, 해군 군악대 출신인 박태희가 윤밴의 초창기 멤버로 가세하게 되었다.
  각자
오랜 밴드 경력과 경험을 갖춘 이들은 윤도현의 2집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특히 2집에서 작곡에 있어서도 역량을 발휘하며 윤도현의 짐을 상당부분 덜어주었는데, 3집 [소외]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유병열의 작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 정도로 명실상부한 밴드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또한 밴드 멤버들의 뛰어난 연주력은 거의 매달마다 계속된 라이브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윤도현밴드의 인기를 높이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3집에서 지나치게 커진 유병열의 비중은 리더인 윤도현과의 마찰을 불렀고, 리메이크 음반인 4집 [한국 Rock 다시 부르기] 즈음에서는 이 경쟁이 밴드의 와해를 빚는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4집을 마지막으로 유병열과 엄태환은 탈퇴하고, 이 자리를 소찬휘, 김광진 등의 콘서트 세션으로 활약하던 기타리스트 허준이 메우면서 새로운 4인조의 윤도현 밴드가 탄생하게 된다.
  유병열이 빠지면서 다시 음악적 구심점을 차지한 윤도현은 이전과 달리 스크래칭이나 랩을 음악에 삽입하는 등 다양한 변신을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4인조 진용으로 2001년에 발표한 5집 [An Urbanite]는 그 신호탄이었다. 또한 윤도현은 각종 CF 촬영과 방송 출연으로 이전보다 활발한 대외 활동을 선보이면서 대중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백밴드 형태가 아닌 완전한 밴드 형태로 자리를 잡으면서 라이브 공연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은 물론이다.
  점차 대중적 인기를 높여 나가던 윤밴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민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월드컵 응원가로 전국의 광장을 뜨겁게 달군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이들은 축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월드컵 응원가를 불렀고, 윤밴은 순식간에 ‘국민가수’의 칭호를 부여받는 톱스타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윤도현밴드는 사회 참여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골수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 2003년 내놓은 6집 [YB Stream]의 경우에도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건을 다룬 ‘꽃잎’과 폭력에 대한 비판을 담은 ‘죽든지 말든지’ 등의 노래를 통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여준 바 있다. 또한 윤도현은 주류 가요계의 스타답지 않게 자주 정치적-사회적인 소신을 피력하며 ‘의식 있는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