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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지킨 양심 종교를 넘어 시대의 아픔 어루만진 ‘큰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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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배노필] 시대는 변했다. 6월 항쟁에 이어 90년대 민간인 출신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추기경은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도 굵직한 사회적 이슈마다 발언을 그치지 않았다. '저항'에서 '훈수'로 성격만 변했을 뿐 역할은 여전했다.

95년 6월 6일 경찰병력이 명동 성당에 들어와,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 노조 간부들을 연행해 갔다. 60~80년대 민주화의 성지가 공권력에 유린된 것이었다. 독재정권에서도 없던 일이었지만 오히려 일부 여론은 교회가 불법 파업을 비호한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시대와의 불화=민주화 이전엔 민주화를, 민주화 이후엔 인간화를 위해 상식과 대화를 강조한 추기경의 목소리를 사회가 늘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 이후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더욱 그랬다.

98년 서울대교구장 직을 물러난 뒤에는 현실참여적 발언을 자제했다. 후임자를 위해 자신이 작아져야 한다는 소신도 작용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잊지 않았다. 정치인, 언론들이 이슈가 있으면 그를 찾았고 사심없는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추기경은 '참여정부'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상식과 대화를 강조하는'열린 보수'를 자처했던 그로서는 진보개혁 세력은 배타성이 지나치다고 보아서였다.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는 동기가 순수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독선적 자세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정부의 과거사 청산 움직임에 대해 회의를 나타냈다. 수도 이전 문제에도 헌재의 위헌 판결을 지지했다. 이른바 4대 개혁입법에도 유보 내지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권력을 잡으면 (언론을 통제하려는) 그런 유혹을 받는 것 같다”(언론법 개정에 대해),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급하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실제 적용 사례는 계속 줄고 있는 걸 보면 운용을 잘하면 된다”(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에 대해), “사학의 잘못은 시정하되 사학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학교와 교육을 위해 모두 좋다”(사학법 개정에 대해) 는 등의 쓴소리를 계속했다. 고임금을 받는 큰 사업장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파업은 생존권을 요구하던 종래의 파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도 했다. 당연히 교계 안팎에서 비판이 일었다. “시대에 뒤진 분”이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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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끄러운 사람=추기경은 이런 비판에 초연했다. “지금까지 너무 칭찬 말씀만 듣고 살아서 '나를 우상으로 만들려는가' 하고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판을 받으니 내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려는 뜻인 것 같아 오히려 고맙다”고도 했다. 자신의 학병 시절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며 '친일파'란 비난이 나오는 데 대해서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그 시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며 '허허' 웃을 뿐이었다.

은퇴 후의 추기경은 더 바빴다. 운전을 배워 여행을 다니리라던 꿈은 일찍 접어야 했다. 강연, 미사 집전, 인터뷰 요청 등이 밀려들었다. 추기경이 머물던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을 찾는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유일한 취미인 월 1회 북한산행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감사의 기도와 봉사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위로와 격려를 해준 은인들을 위해, 교회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도가 많았다. 자신의 사목생활을 돌아보며 스스로 '60점짜리'로 평가하기도 했던 추기경. 그는 2004년 펴낸 자서전에서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점이 후회스럽다. 좀 더 몸을 낮추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어야 하는데…”라고 회고했다.

그는 은퇴 이후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옹기장학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북한 선교를 위해 노력했다. 이념을 넘어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몸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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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너희 모두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길을 제시해 온 김수환 추기경. 그는 이제 사제의 옷을 벗고 시대의 예언자 역할을 뒷사람들에게 남겨놓은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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