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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로 가득했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물결이 넘쳐 흘렀고 고인이 걸어온 삶의 족적과 그가 남긴 정치·사회·문화적 유산이 조명받았다. 경향신문은 이처럼 전례없는 추모 열기의 의미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 등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지난 28일 마련했다.




손석춘 원장, 윤평중 교수, 김호기 교수(왼쪽부터)가 28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행렬과 추모 열기가 가득한 서울 덕수궁 길에서 서거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서성일기자 >

윤평중 한신대 교수=노 전 대통령 치세 때 참여민주주의가 만개해 시민들은 민주주의 성취를 당연하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민주주의의 성취'로 보였던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기조, 신권위주의로의 복귀, 소수 기득권 세력을 위한 통치에 대한 광범위한 실망 내지 불만이 2008년 (촛불시위로) 1차 폭발했고 2차적으로 이 추모 열기 속에 내연(內燃)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자칫 폭발할 수 있어요. 현 정부가 환골탈태해 상처 입은 시민들의 마음을 포용하지 않으면 < 삼국지 > 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패주하게 만들 듯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패주케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가능합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노무현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입안·결정권자로서 노무현, 인간으로서 노무현,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이 있었어요. 정책 입안·결정권자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논란은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탈권위나 균형발전, 화해·포용정책은 긍정적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비정규직 법안 등은 문제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노무현은 가장 서민적·탈권위적인 지도자였고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은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거를 통해 인간 및 시대정신으로서 노무현을 새롭게 발견했기에 추모 열기가 커졌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의 대비 속에서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어요.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대비해 민주적·자유적이고, 사회적 약자 구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정부였다는 걸 재발견한 겁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분양소 앞 슬픔은 '바보 노무현'에 대한 슬픔이면서 그가 좌절하고 실패한 것에 대해 우리 민중이 끌어안는 모습으로 나타는것"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저는 한국 민중의 건강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계에 비해 최영에게 더 애정이 많은 것처럼 한국 민중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노무현의 정책에 대해 다 찬성하지 않지만 그의 실패, 좌절, 자살로 끝난 비운을 자기의 억눌린 부분과 동일시하는 겁니다. 조롱당한 노무현의 모습에서 삶이 조롱당하는 민중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거죠. 분향소 앞에서의 슬픔은 노무현에 대한 슬픔인 동시에 소통할 길 없고 억울한 일을 풀 길 없는 사람들의 갑갑함의 동일시라고 생각합니다.

윤평중=자연인·정치인·공인으로서의 노무현이 비극적 죽음으로만 비로소 재발견될 수 있었던가를 문화적·대중심리적 맥락에서 진중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견이 있거나 관점이 다른 사람이나 진영의 장점과 미덕을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무현 정권 마감에 즈음했을 때는 총체적 실망이 국민 일반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는 변한 게 없는데 민심이 변한 겁니다. 비극적 죽음, 정치적 압박, 약자로서의 희생양 등이 다 깔려 있지만 남의 장점을 제고시키기보다 깎아내리는 풍조에 알게 모르게 동참했던 미안함과 집단적 속죄의식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호기=한 정부와 정치적 리더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뤄집니다.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과정에 있었는데 돌연한 죽음이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 정신, 양심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못해왔다는 거죠.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입니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런 가치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손석춘='대통령 노무현'보다는 노무현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바보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짙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뽑아줬을 때 기대했던 '바보 노무현'의 모습, 그것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된 데 대한 향수와 연민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동정심 깔려 깎아내리기 풍조에 편승 속죄의식도재평가도 문제지만 고평가도 경계를 민주주의 확장 열쇠는 현정부 손에"

윤평중=참여정부와 정치인 노무현은 명암이 교차하는데 그 부분을 입체적·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경제적으로 성취가 있었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했고 집권 5년간 수출 증가율은 두자릿수였습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한·미 FTA를 추진했고, 지방 분권화, 양극화 완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추진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선전 선동에 가까운 이데올로기 공격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180도 바뀐 것은 비극적 죽음, 현 정부 실정, 민심 이반 등이 깔려 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걸 봐야 이 사태의 복합적인 얼굴이 잡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균형 잡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호기=촛불집회,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 전 대통령 서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강화되어온 물질·경쟁·시장 만능주의를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경제 살리기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이뤄져온 총체적인 성찰의 과정 속에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가 대단한 전환점을 제공하는 의미가 있어요.

손석춘=분향소에 많이 내걸린 글이 '가난한 사람들의 대통령' '서민 대통령'인데 현재 이명박 정부의 '부자 대통령'이라는 생각과 이어져 있다고 봅니다. 노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게 된 것은 '바보 노무현' 이미지였습니다. 지역주의와 색깔 공세에 정면 도전했고 검찰과 언론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지금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부자 신문의 왜곡 보도로 인해 그에 대한 향수를 자아냈고, 결국 좌절하고 실패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 민중이 비극적 최후를 끌어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평중=시대 착오에 가까운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에 대한 서민들의 광범위한 박탈감이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정치인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매력과 그 정치인이 국가 정책으로 폈던 노선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현현됐고 일반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나눠봐야 합니다. 약자를 위한 정책을 폈지만 민심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됐고 부동산 정책이 대실패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습니다. 본인이 선한 의도를 가진 것, 인간적 덕목을 가진 것과 그게 역사의 지평에서 구체적 정책으로 나타나 나라를 어떻게 꾸려나갔는가는 구분해야 합니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지금 왜 그 빛만 상찬의 대상이 되느냐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평가도 문제 있지만 일방적인 고평가도 객관적 태도가 아닙니다.

김호기=노무현 개인 가치와 정책 사이에 내적 긴장이 있었는지를 국민들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그게 가치와 정신입니다. 노무현 정부 3대 국정지표인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 번영의 동북아시대가 노무현의 가치를 집약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치와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기치 않은 죽음이 선물로 안겨준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1년을 살아보니까 우리 사회의 정신적 가치가 바로 노무현적 가치여야 한다는 걸 많은 국민들이 깨닫고 공감했고, 그걸 지켜주지 못해 추모 열기로 나타난 것입니다.

손석춘=노무현 정부 최대의 공은 탈권위주의로 검찰과 언론 개혁에 상당한 공(功)이 있지만 그 속에 과(過)도 있습니다. 내부적 개혁 요소를 놓아두고 표면적 요소를 개혁하려고 한 무모함에 비극이 있습니다. 언론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에 자율성을 주고 미디어를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권위를 놓은 게 아니라 권위를 잃은 겁니다. 개혁 지점을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표면적 갈등을 일으키면서 중요 과제를 숙제로 남겼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결과가 자신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조롱으로 나타나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윤평중='진정성'의 정치학이 온존하게 성립하려면 진정성 개념 자체가 주관성의 차원에서 상호주관적인 역사의 지평으로 확대돼야 합니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좋은 의도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냐는 방법론을 주도면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사회에서 나의 진실한 의도를 정책으로 전환할 때 어떻게 세를 얻고 다수 세력의 지지를 얻을까가 필수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실 정치적으로는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정치를 했고 좋은 의도인데도 후반기에 갈수록 궁지에 몰렸습니다. 좋은 가치와 정신을 현실세계와 어떻게 접합시키고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편안하게 하고 다수 시민의 자발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를 지향해야 했는데, 노무현 정부의 미완의 개혁이 교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서거를 통해 인간·시대정신으로 노무현 재발견, 현 정부 1년과 대비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국민과 함께하는 노무현적 가치여야 한다는걸 깨달아"

김호기=노무현 정부를 칭하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에 명암이 담겨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좌파'에 방점을 찍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경쟁력을 높이면서 사회적 분배 등 공공성을 높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점은 신자유주의에 찍혔습니다. 또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국민통합' '사회통합'에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무조건적 통합이 아니라 갈등 속에 통합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 전 대통령도 그걸 알았고 목표로 했지만 결과는 통합 속 갈등이었습니다. 통합을 제고시킨 게 아니라 약화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갈등을 조장했습니다.

손석춘=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바보 노무현' 때의 가치입니다. 지역과 색깔을 넘어선 정치, 검찰·경찰·국세청을 동원한 권력기구의 억압을 넘어선 사회, 기득권 세력만 옹호하는 경제 체제를 넘어 사회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배려하는 경제 정책 등에 대한 갈망들이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로 표출되어 있고, 우리의 과제도 거기에 있습니다.

윤평중=유서에 원망하지 말라고 한 걸 이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화해와 통합이 레토릭으로 구사되면서 의도를 감추는 그런 현상도 엿볼 수 있어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번 일이 한국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제고시키는 방식으로 풀려야 하는데, 역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입니다. 1년여간 축적된 국민들의 좌절감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국정을 일대 쇄신해야 합니다. 야당이나 비판적 진영도 좀더 소통하는 자세로 책임지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호기=새로운 소통을 위한 관용의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과 집단을 승인하지 않는데 요즘 그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상대방 생각과 이념을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활발한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진정성이 중요합니다. 정치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형식적 태도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는 관용의 문화가 시급히 정착되어야 합니다. 또 '노무현 가치'에 대한 성찰적·반성적 계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나쁜 풍토 중 하나는 앞서 존재했던 정치 세력들의 정책을 모두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념이 다른 정부라도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상대방 정책과 방향을 성찰적으로 계승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윤평중=칭찬하고 격려하는 문화,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서 인정하고 기를 북돋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손석춘=기득권 세력인 검찰과 신문의 책임이 있습니다.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수사 결과를 흘렸고 신문은 그걸 바탕으로 조롱을 일삼았습니다. 지금 비극적 자살 앞에서도 검찰로 대표되는 이명박 권력기구는 성찰의 모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진보세력도 노무현의 실패에 대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김호기=지난주 토요일 이후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추모 열기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시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차분히 평가해서 사회 발전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입니다.

< 정리 김진우·김종목기자 jwkim@kyunghyang.com >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로 가득했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물결이 넘쳐 흘렀고 고인이 걸어온 삶의 족적과 그가 남긴 정치·사회·문화적 유산이 조명받았다. 경향신문은 이처럼 전례없는 추모 열기의 의미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 등을 짚어보는 좌담회를 지난 28일 마련했다.




손석춘 원장, 윤평중 교수, 김호기 교수(왼쪽부터)가 28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행렬과 추모 열기가 가득한 서울 덕수궁 길에서 서거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서성일기자 >

윤평중 한신대 교수=노 전 대통령 치세 때 참여민주주의가 만개해 시민들은 민주주의 성취를 당연하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민주주의의 성취'로 보였던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기조, 신권위주의로의 복귀, 소수 기득권 세력을 위한 통치에 대한 광범위한 실망 내지 불만이 2008년 (촛불시위로) 1차 폭발했고 2차적으로 이 추모 열기 속에 내연(內燃)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자칫 폭발할 수 있어요. 현 정부가 환골탈태해 상처 입은 시민들의 마음을 포용하지 않으면 < 삼국지 > 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패주하게 만들 듯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패주케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가능합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노무현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입안·결정권자로서 노무현, 인간으로서 노무현,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이 있었어요. 정책 입안·결정권자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논란은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탈권위나 균형발전, 화해·포용정책은 긍정적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비정규직 법안 등은 문제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노무현은 가장 서민적·탈권위적인 지도자였고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은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거를 통해 인간 및 시대정신으로서 노무현을 새롭게 발견했기에 추모 열기가 커졌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의 대비 속에서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어요.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대비해 민주적·자유적이고, 사회적 약자 구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정부였다는 걸 재발견한 겁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분양소 앞 슬픔은 '바보 노무현'에 대한 슬픔이면서 그가 좌절하고 실패한 것에 대해 우리 민중이 끌어안는 모습으로 나타는것"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저는 한국 민중의 건강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계에 비해 최영에게 더 애정이 많은 것처럼 한국 민중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노무현의 정책에 대해 다 찬성하지 않지만 그의 실패, 좌절, 자살로 끝난 비운을 자기의 억눌린 부분과 동일시하는 겁니다. 조롱당한 노무현의 모습에서 삶이 조롱당하는 민중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거죠. 분향소 앞에서의 슬픔은 노무현에 대한 슬픔인 동시에 소통할 길 없고 억울한 일을 풀 길 없는 사람들의 갑갑함의 동일시라고 생각합니다.

윤평중=자연인·정치인·공인으로서의 노무현이 비극적 죽음으로만 비로소 재발견될 수 있었던가를 문화적·대중심리적 맥락에서 진중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견이 있거나 관점이 다른 사람이나 진영의 장점과 미덕을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노무현 정권 마감에 즈음했을 때는 총체적 실망이 국민 일반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는 변한 게 없는데 민심이 변한 겁니다. 비극적 죽음, 정치적 압박, 약자로서의 희생양 등이 다 깔려 있지만 남의 장점을 제고시키기보다 깎아내리는 풍조에 알게 모르게 동참했던 미안함과 집단적 속죄의식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호기=한 정부와 정치적 리더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뤄집니다.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과정에 있었는데 돌연한 죽음이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 정신, 양심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못해왔다는 거죠.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입니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런 가치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손석춘='대통령 노무현'보다는 노무현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바보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짙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뽑아줬을 때 기대했던 '바보 노무현'의 모습, 그것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된 데 대한 향수와 연민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동정심 깔려 깎아내리기 풍조에 편승 속죄의식도재평가도 문제지만 고평가도 경계를 민주주의 확장 열쇠는 현정부 손에"

윤평중=참여정부와 정치인 노무현은 명암이 교차하는데 그 부분을 입체적·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경제적으로 성취가 있었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했고 집권 5년간 수출 증가율은 두자릿수였습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한·미 FTA를 추진했고, 지방 분권화, 양극화 완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추진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선전 선동에 가까운 이데올로기 공격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180도 바뀐 것은 비극적 죽음, 현 정부 실정, 민심 이반 등이 깔려 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걸 봐야 이 사태의 복합적인 얼굴이 잡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균형 잡힌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호기=촛불집회,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 전 대통령 서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강화되어온 물질·경쟁·시장 만능주의를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경제 살리기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이뤄져온 총체적인 성찰의 과정 속에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가 대단한 전환점을 제공하는 의미가 있어요.

손석춘=분향소에 많이 내걸린 글이 '가난한 사람들의 대통령' '서민 대통령'인데 현재 이명박 정부의 '부자 대통령'이라는 생각과 이어져 있다고 봅니다. 노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게 된 것은 '바보 노무현' 이미지였습니다. 지역주의와 색깔 공세에 정면 도전했고 검찰과 언론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지금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부자 신문의 왜곡 보도로 인해 그에 대한 향수를 자아냈고, 결국 좌절하고 실패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 민중이 비극적 최후를 끌어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평중=시대 착오에 가까운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에 대한 서민들의 광범위한 박탈감이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정치인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매력과 그 정치인이 국가 정책으로 폈던 노선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현현됐고 일반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나눠봐야 합니다. 약자를 위한 정책을 폈지만 민심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됐고 부동산 정책이 대실패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습니다. 본인이 선한 의도를 가진 것, 인간적 덕목을 가진 것과 그게 역사의 지평에서 구체적 정책으로 나타나 나라를 어떻게 꾸려나갔는가는 구분해야 합니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지금 왜 그 빛만 상찬의 대상이 되느냐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평가도 문제 있지만 일방적인 고평가도 객관적 태도가 아닙니다.

김호기=노무현 개인 가치와 정책 사이에 내적 긴장이 있었는지를 국민들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그게 가치와 정신입니다. 노무현 정부 3대 국정지표인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 번영의 동북아시대가 노무현의 가치를 집약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치와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기치 않은 죽음이 선물로 안겨준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1년을 살아보니까 우리 사회의 정신적 가치가 바로 노무현적 가치여야 한다는 걸 많은 국민들이 깨닫고 공감했고, 그걸 지켜주지 못해 추모 열기로 나타난 것입니다.

손석춘=노무현 정부 최대의 공은 탈권위주의로 검찰과 언론 개혁에 상당한 공(功)이 있지만 그 속에 과(過)도 있습니다. 내부적 개혁 요소를 놓아두고 표면적 요소를 개혁하려고 한 무모함에 비극이 있습니다. 언론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에 자율성을 주고 미디어를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권위를 놓은 게 아니라 권위를 잃은 겁니다. 개혁 지점을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표면적 갈등을 일으키면서 중요 과제를 숙제로 남겼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결과가 자신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조롱으로 나타나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윤평중='진정성'의 정치학이 온존하게 성립하려면 진정성 개념 자체가 주관성의 차원에서 상호주관적인 역사의 지평으로 확대돼야 합니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좋은 의도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냐는 방법론을 주도면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민주사회에서 나의 진실한 의도를 정책으로 전환할 때 어떻게 세를 얻고 다수 세력의 지지를 얻을까가 필수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실 정치적으로는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정치를 했고 좋은 의도인데도 후반기에 갈수록 궁지에 몰렸습니다. 좋은 가치와 정신을 현실세계와 어떻게 접합시키고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편안하게 하고 다수 시민의 자발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를 지향해야 했는데, 노무현 정부의 미완의 개혁이 교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서거를 통해 인간·시대정신으로 노무현 재발견, 현 정부 1년과 대비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국민과 함께하는 노무현적 가치여야 한다는걸 깨달아"

김호기=노무현 정부를 칭하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에 명암이 담겨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좌파'에 방점을 찍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경쟁력을 높이면서 사회적 분배 등 공공성을 높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점은 신자유주의에 찍혔습니다. 또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국민통합' '사회통합'에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무조건적 통합이 아니라 갈등 속에 통합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 전 대통령도 그걸 알았고 목표로 했지만 결과는 통합 속 갈등이었습니다. 통합을 제고시킨 게 아니라 약화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갈등을 조장했습니다.

손석춘=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바보 노무현' 때의 가치입니다. 지역과 색깔을 넘어선 정치, 검찰·경찰·국세청을 동원한 권력기구의 억압을 넘어선 사회, 기득권 세력만 옹호하는 경제 체제를 넘어 사회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배려하는 경제 정책 등에 대한 갈망들이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로 표출되어 있고, 우리의 과제도 거기에 있습니다.

윤평중=유서에 원망하지 말라고 한 걸 이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화해와 통합이 레토릭으로 구사되면서 의도를 감추는 그런 현상도 엿볼 수 있어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번 일이 한국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제고시키는 방식으로 풀려야 하는데, 역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입니다. 1년여간 축적된 국민들의 좌절감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국정을 일대 쇄신해야 합니다. 야당이나 비판적 진영도 좀더 소통하는 자세로 책임지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호기=새로운 소통을 위한 관용의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과 집단을 승인하지 않는데 요즘 그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상대방 생각과 이념을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활발한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진정성이 중요합니다. 정치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형식적 태도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는 관용의 문화가 시급히 정착되어야 합니다. 또 '노무현 가치'에 대한 성찰적·반성적 계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나쁜 풍토 중 하나는 앞서 존재했던 정치 세력들의 정책을 모두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념이 다른 정부라도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상대방 정책과 방향을 성찰적으로 계승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윤평중=칭찬하고 격려하는 문화,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서 인정하고 기를 북돋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손석춘=기득권 세력인 검찰과 신문의 책임이 있습니다.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수사 결과를 흘렸고 신문은 그걸 바탕으로 조롱을 일삼았습니다. 지금 비극적 자살 앞에서도 검찰로 대표되는 이명박 권력기구는 성찰의 모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진보세력도 노무현의 실패에 대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김호기=지난주 토요일 이후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추모 열기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시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차분히 평가해서 사회 발전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입니다.

< 정리 김진우·김종목기자 jw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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