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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하는 내용이어서 글을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은 변할 수 없어요 . 아버지의 자리가 흔들리면 아내와 자식도 불안하고, 반대로 아버지의 자리가 확고하면 아내와 자식들의 자리도 탄탄해지는 법이니까요." - 최불암 인터뷰 중에서



 최불암 씨는 설명이 거의 필요 없는 인물이다. 특히 그가 ‘전원일기’를 통해서 보여줬던 ‘한국의 전형적인 아버지 상’은 그를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만들어 줬다. 그런 만큼 역시 만나자 마자 질문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아버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는 다 똑같지, 커다란 시대적 어려움을 느낌이 똑 같고, 산업사회가 되면서 농경문화에서 살던 어른의 자리들이 분산되어가지고 가부장이라는 틀을 모두 잃어 버렸잖아요. 아파트라는 것 때문에 대가족이 없어지고 내가 했던 전원일기도 그렇거든요. 애들 장면이 거의 없는 거야. 시청자들이 고향처럼 느꼈고, 대가족제가 점점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죠. 그게 4대가 모여 사니까 놀라웠던 거죠. 후진타오 총리가 중국이 상당히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면서 농촌이 망가지고 있다. 대도시 발전에 의해서 농촌이 소외 받는 지역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시골 사람들이 다뤄질 수 있는 프로그램, 예를 들어 '전원일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고 해. 당시 이런 화제까지 돌았죠.
 
 우리도 좀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고, 가족이라는 가정, 부모 등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되는데, 오늘 아침 신문 기사를 보니 '세상이 막장처럼 되어버렸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세상이 지금 어떻게 가고 있냐를 알려면 TV을 보면 바로 파악이 된다고, 가족에 대한 고민이 있나, 불륜과 복수와 같은 막장드라마로 이어지고, 요즘 연쇄살인범, 용산 참사 등 사실 TV에서 방영되는 ‘무기’라는 거죠. 모두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스릴로만 찾으려는 자본주의 모순이죠. 사람이 어떤 도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 도리 속에 있는 것이 가족이고 부모인데, 그런 것들이 모두 금전만능 가치로부터 소멸되고 만 거죠. 산업사회에서 불러온 거고, 현대 사회에서 불러온 거라는 거죠. 여기에서 아버지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나 싶어요.

 결국, 되돌아보면 아버지들이 다 만들어 놓은 결과라는 겁니다. 이런 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도 우리 아버지들의 부지런함, 능력, 빨리빨리 가려는 아버지들의 열의 등에서 나타난 것이죠. 근데, 이제 어떻게 될지는 많은 철학자, 정치인, 경제인들이 대안을 줘야 하는데, 싸워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져서 원통 하는 것만 생각하니 말이죠. 문제지요.

 내가 아버지 노릇한 게 뭐 있나요? 내가 한 아버지란 이야기는.... 옛날에 얻은 수사반장은 아버지라는 개념보다도, 사회에서 부르짖는 남자 정도이고, 진짜 아버지는 전원일기 아버지이죠. 그냥 소박하고, 흙같이 순박한 모습을 가진 사람, 최불암이 가진 전원일기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듣게 되었죠.



■■ ‘극 중 아버지’ 이미지를 벗어나보려고 생각한 적은?

 벗어나려고 하지만 심성이 어떻게 바뀌나요. 난 벗어날수록 좋은 건데, 근데 벗어나면 안 될 겁니다. 그냥 50대 50 이죠. 내가 역할을 닮는 것도 50%, 그 역할이 나에게 오는 것도 50%, 내가 완벽하게 70%정도 역할을 닮아야 나를 바꿨다고 할 텐데 그러진 못하죠. 분석을 달리해 보면, 어떤 부분에서 제로입니다. 연기자는 제 몸을 악기라고 치는데, 악기에도 무슨 소리가 나느냐, 어떤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지 연구해야 하는데, 그게 50대 50 이란 이야기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일정부분 살아온 과정, 살아온 의식, 앞으로의 미래, 살아온 상상 이런 것들이 그 범주에서 바뀌지 않는 거라고 봐요.


■■ 방송 연기자들에게도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나요?
 
 연기자의 아버지라는 것은 어렵고, 선배는 될 수 있어요. 뭘 느끼는 것을 같이 공유하고 싶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죠. 노인네가 되면 하지 말라는 것 중에 하나가 '말을 많이 하지 마라' 가 있듯이, 후배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그 양반 만나면 말이 많아' 이러면 욕하는 거거든요. 그러기에 입 다물고, 중요한 이야기만 하고, '알았어, 잘 가' 그런 거 하면 끝이죠. 이런 것이 뭐 잘못된 건데, 어른이란 것은 살아온 세월만큼 경험이 있는 건데 말이죠.


■■ 요즘 방송을 보면 '아버지 이야기'가 별로 없더군요. 있어도 별 중요성도 없고 기존의 아버지 같은 존재감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 방송에서 아버지 이야기가 제일 없을 거예요. 대부분 외부제작을 하기 때문에 아버지, 형제,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다 나오면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다 쳐버리고 가는 거죠. 어떤 드라마는 주인공 둘만 나와서 하는 것도 있고, 작가가 그렇게 쓰면 되는 거니까, 가족이 무시되는, 어른이 무시되는, 이런 형편이 현재 제작 형편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전에는 '아버지의 자리' 라는 게 있었죠, 우리 온돌문화로 말하자면, ‘아랫목은 아버지의 자리다’라는 게 있었거든요 .근데, 다른 건 몰라고 그것만은 지켰어요.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는 것, 우리 어머니도 그 자리는 탐내지 않으셨고, 거기는 아버지의 자리이니까 (극 중)우리 처도 몸살이 나서 뜨거운 데에 몸을 지지고 싶어도 가급적 안 가요. 내가 거기에 앉는 거지. 동네에서 저보다 더 어른이 와도 '동네 어르신 추우신데 여기 앉으시죠' 그래도 사양해. 그건 아버지의 자리다 그런 거죠.
 하루는 전원일기 방송에 있었던 일인데, 아랫목은 있는데 흔적이 있어야지. 카메라 항상 3대가 들어와 있지만, 어디가 아랫목 인지, 윗목인지 알아야지. 뭐 좀 표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당시 80년대 스프레이가 처음 나왔어요. 그것도 밤색 스프레이였는데, 방송국은 모두 비닐 장판으로 되어있었어요. 이걸 뿌리면 아랫목이 탄 자리가 나오겠다 싶어서 뿌려봤는데 아주 딱이예요. 그래서 그 걸 내 자리에 뿌렸어요. 근데, 미술 하는 사람이 '이거 누가 했냐?' 하는 거야, 내가 했다고 했더니 '왜 했냐' 하더군, ‘이거 아랫목이란 것이 있어야지, 자네는 아랫목을 구경도 못했어?’ 했더니', '내일 또 써야 하는데 여길 또 어떻게 맞추냐는 거지' 내가 볼 때 당시 돈 만원도 안 될 거 같아, 그래서 지갑을 열면서 '요기 스프레이 뿌린 거는 내가 살게' 했었고, 당시 담당자와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죠. 추후 원만하게 넘어가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렇게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한 것이 집에도 내 자리가 있어야겠구나. 먼저 내 자리는 있었지만 와이프하고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었고, 점차 자식이 커가면서 내가 사용하던 방을 쓰게 되었고, 결국 아내에게 밀리고, 자식에게 밀리고 갈 데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응접실을 이젠 내방으로 내가 써야겠다고 했더니, 응접실은 공용으로 써야지 당시 자리가 어디 있느냐고 하고, 그거 말고 전원일기에 보면 혼자 앉아있는 의자 있지, 방석을 근사한 것을 만들어서, 누렇게 금처럼 되고, 용(龍)무늬도 있는 거로 왕이 앉는 방석 같은 거로 말이야. 그러니까 막 웃지 당신이 뭐 왕이냐고 말이야.
 근데, 뭔가 상징성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잘 되지 않아, 결국 책장을 베란다 옆에 하나 놓고, 좌식을 했어요. 그리고 여기는 건들지 말아 아버지의 자리니까. 연필이 이렇게 있으면 그대로 놔두고,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글도 쓰고, 신문도 거기서 보고, 대사도 거기서 외우고 하니까 아이들이 정리가 되더라구요. 자기 방에서 문을 안 열어, 그러니까 공부도 되고 대학도 들어가더라구요. 당시 문 열고 TV도 보고,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듣고, 연필도 돌리고 하면서 공부 하던 것이, 내가 거기 나와 있고 나서 문을 못 여는 거지. 우리 아들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그래서 전원일기 혜택이 거기도 50% 적용 된 거죠. 결국 아버지의 자리를 지킨 거죠. 근데, 요즈음 아버지의 자리가 없거든. 응접실은 공유면적이지, 거기다 어딜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요.

 근데, 아버지라는 개념이 사실은 잘 표현이 안 되죠. 아버지가 웃지 않는 아버지, 근엄하고 권위적 아버지, 이거에서 탈바꿈해야 될 것 같아요. 진짜 웃기고, 같이 놀 수 있는 식으로 바뀌어야 할 겁니다. 그런다고 아버지의 권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유머러스하고 잘 웃어주는 아버지, 아이들의 형편을 잘 이해해주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 쪽으로 가야 된다고 봐요. 굳이 표현하자면 ‘멋진 아버지’라고나 할까요.
 지금의 아버지는 너무 연약하게 해석하지 않았느냐, 좀 모질게, 강건하게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 연약하게 보이는 것 같더군요.


■■ 30,40대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나요?

 아버지란 자리는 하나의 국가로 말하자면 대통령이나 마찬가지고, 축이거든. 축이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어야지, 흔들리면 안 된다고요. 그러나 그 축에는 웃음도 있고, 유머도 있고, 애들의 정서를 이해해주는 아주 어린 마음도 다 포함하고 있어야 하죠. 그러니까 자리가 참 중요해요. 내가 농담 삼아 전원일기 이야기도 했지만, 의자 하나라도, 소파 하나라도, 아버지의 자리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 그럼 아이들이 거기 가서 뛰어 놀게 하는 짓은 못하게 해야 하고, 나머지 공간에서 뛰고, 난리 쳐도 상관없는 거죠. 아버지의 자리만큼은 인정을 해 주어야지, 그걸 누가 할 수 있느냐, 어머니가 할 수 있어요, 이건 아버지의 자리라고 자식에게 가르쳐야 하는 겁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든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땅을 디디고 일하는 모습을 식구들이 다 봤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땀방울을 직접 본 거죠. 하지만 요즘은 빌딩과 아파트에 가려서 그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그렇지만 안 보인다고 그 노고가 어디 갑니까. 어머니가 아버지 노고를 알려 줘야죠.


■■ '국민 아버지' 칭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부담스럽죠. 더 아버지다운 면을 못 갖추었는데, 국민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저를 '국민 아버지' 라고 이야기 한다면, 송구스러울 뿐이죠.


■■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님하고 같이 산 적은 1년 정도 밖에 안 될 겁니다. 8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당시에는 아버지 소리가 안 나오더라구요. 저를 낳고 바로 중국에 갔으니까, 돌잔치고 뭐고 없이 거기서 사셨고, 해방되고 나서 나오신 거죠. 그러니까 아버지하고 같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죠. 어머니께서 '아버지 식사하시라고 해라' 그러면 '아버지 식사하시래요'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버지 소리를 3번밖에 못 불러봤으니 '식사 하시랩니다' 하고 마는 거죠.

 그러나 아버지 DNA 는 내 몸에 다 들어와 있죠. 그렇다고 아버지를 모른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이야기이고, 부모라는 게 왜 부모냐면, 우리는 부모를 알아야 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아버지가 가졌던 것을 내가 받는 거니까, 아버지가 당뇨다 그러면 100% 저한테 당뇨가 있는 거죠. 부모를 무시하면, 아버지가 당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되는 거죠. 그럼 나중에 당뇨환자로 죽는 거죠. DNA는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 [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옛말은  아버지를 알고, 어머니를 알라는 거라고 봅니다. 자기관리를 해야 하고, 못 된 거, 잘 못된 거 그런 것들은 남기지 말아야 하는 거죠.


■■ 한국 아버지들의 본래 모습은 어떤 건가요?

 연기를 지금까지 하면서 '한국인이 무엇인가? 한국인이 어떤 사람인가?' 하나 만들려고 했어요. 한국인의 정체라고 할까, 그런 자료를 찾아보곤 했는데, 다 똑같은 이야기더군요. 선비정신이 있는 것이 한국인이다. 토기처럼 질박함이 있는 것이 한국 사람이다. 은근하고 끈기가 있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그런 정도에서 맴 돌더라구요. 예를 들어 미국사람 같은 경우에는 카우보이 정신을 가졌고, 개척정신을 가졌고, 인도주의정신을 가졌고, 정의롭다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미국인처럼 정리가 안 됐더군요. 선비정신이 제일 많아요. 그럼 선비정신이 뭐냐? 지금은 정체성이 없어졌죠. 전부 외래문화가 들어와 가지고, 옷은 서양 옷 입고, 사고는 상투를 매고 그런 식이죠. 배우로서 한국인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임무겠다 해서, 한국인상, 한국 남성상, 한국의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런 거 있죠. 대표적 미국인 같으면, 존 웨인이나 케리쿠퍼 등인데 그곳에서는 학교에 가면 그들 동상이 있다 말이죠. 이것이 우리 아버지다, 미국인이다 그런 거거든요. 근데, 우리는 그런 게 없지 뭡니까?



■■ 경제가 어려운 현실, 여자도 힘들겠지만 남자들, 특히 아버지는 더욱 심리적으로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아버지들에게 격려 한마디?

 옛날에 선비들이 밥(끼니)을 다 잘 잡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꼭 배를 채워야지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가치관이라고 할까 그런 쪽을 존중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거든요. 남자라는 것이 어느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거든요. 풍족하게 해주고 싶은 욕망은 대한민국 아니라 세계 남자 모두가 다 그럴 겁니다. 여자는 아니 낳고, 보호해서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고, 아버지 울타리를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게 안 되었을 경우, 참 불행한 이야기죠. 근데 이런 것을 가족에서 받아주어야 해요. 아버지를 비난하거나, 노숙자를 만들면 안 되는 거죠. 가족이 이럴 때 더 결속을 하고, 특히 어머니가 아버지를 더 많이 격려해야 해요.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뭐 어떤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말로 위로를 해 봤자 소용없죠. 빨리 경제가 좋아져야지.
   
 항상 너털웃음으로 인터뷰를 하던 그가 이 부분에서만큼은 미간을 찡그리고 깊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실로 한국의 모든 아버지들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국 어린이 재단 전국후원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 동석했던 어린이재단 관계자와 후원회 행사 진행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앞으로 한국의 아버지에 대한 더 깊은 연기로 훌륭한 아버지상이 정립되는 그 날을 기다려 본다.




이번 최불암씨 '아버지 인터뷰'는 어린이재단 소개로 이루어졌다. 그는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으로 25년을 넘게 했다고 한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부터 김용전작가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 한다> 인터뷰 시작하며"  주관으로 진행하는 행사이다.
두번째 진행으로 개그맨 이홍렬님과 함께 했으며, 계속해서 인터뷰는 진행 될 예정이다.
만약 인터뷰에 참여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492444?RIGHT_BEST1=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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