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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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의 "She Was Too Good To Me....
레드와인 한 잔과 들으면 그만이겠는데....
너무 감미로운데....
쳇 베이커....
하루키의 '째즈에세이'에 그의 소개가 있다.
옮겨볼까...
쳇 베이커<Chet Baker>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다. 거기
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조작할 필요도 없이
그 자신이 '뭔가 매우 특별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
았다. 광휘는 한여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소리없이 어둠에
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약 남용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추
락이 변제기간을 넘겨버린 빚처럼 그를 덮친다.
베이커는 제임스 딘을 닮았다. 얼굴 생김도 비슷하지만, 그 존재
의 카리스마적인 면모나 파멸성도 아주 유사하다.
그들은 시애의 편린을 탐식하여 얻은 자양분을 온 세계를 향하
여 기분좋게, 거의 하나도 남기지 않고 되뿌렸다. 그러나 제임스
딘과 달리 베이커는 그 시대를 살아남았다. 그것이 체 베이커의 비
극이었다, 좀 심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70년대에 쳇 베이커가 부활하여 재평가받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잇다. 그러나 역시 메이커와 그
시대가 정면으로 충돌하듯 격렬하고 선연한 불꽃을 피웠던 50년대
중기, 미국 서해안에서의 그의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연주를 가능
한 오래 뇌리에 담아두고 싶다.
쳇 베이커의 초기 명연은 제리 멀리건의 오리지널 쿼텟(quar-
tet)으로 들을 수 있는데, 그 자신의 쿼텟 연주도 아주 훌륭하다. 이
퍼시픽 레코드 사의 10인치 판은 리더작 중에서도 제일 초기에 속
하는 것이라, 그 가칠가칠하고 어설플 정도로 청신한 음색과 연주
에는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인 러 프리맨의 긴
장감 어리면서도 말끔하고 독특한 터치가 베이커의 혼이 자아내는
'올곧음'에 선명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펫 커텟에서 그의 연주는 시원스럽고 밝은 표층 아래로 침
잠한 고독의 여운을 남긴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 소리는 똑바로
공기를 찌르고,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미련없이 사라진다. 노래는
미처 노래가 되기도 전에, 우리들을 둘러싼 벽에 삼켜진다.
기술적으로 세련된 것은 아니다. 온갖 재주를 피우지도 않는다.
연주는 놀랄 만큼 탁 트여 있다.'저렇게 연주하다가 자칫 실수라
도 하지 않을까, 소리가 똑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감마저
품게 된다. 소리는 끝없이 청렬하고 감상적이다. 그런 소리에서 역
사에 획을 긋는 깊이를 찾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깊이
없음이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은 우리들이 언젠가
경험한 무엇을 닮았다. 아주 많이 닮았다.
Autumn Leaves - Chet Baker
Chet baker(1929.12.23~1988.5.13)
본명 체스니 헨리 베이커(Chesney Henry Baker). 오클라호마주(州) 예일에서 태어나 1940년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중학교 때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하여 베를린의 미국 육군 군악대를 거쳐 엘카미노대학에서도 계속 연주했으며, 1950년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고 있을 동안 밥 시티(Bop City)의 정규 연주자가 되었다.
1952년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오디션에 발탁되었고 이어 당시 할리우드의 헤이그에서 연주하고 있던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의 피아노 없는 4중주단에 들어갔다. 4중주단에서 취입한 리코딩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이후 독주자가 되어 다시 파커와 일했고 이어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리고 1955년부터는 유럽에서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리더로 활동했다. 핏기가 없지만 할리우드의 배우처럼 잘생긴 용모와 반항아라는 명성을 지녀 곧 서해안 쿨재즈의 포스터보이가 되었다. 발라드의 경우 특히 그렇지만 절제된 연주와 신경질적인 흥분과 애조띤 감상이 결합된 스타일로 재즈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청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높으면서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그의 전성 시대보다 오히려 오늘날 더 인기가 있다. 특히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 I Fall in Love Too Easily》나 《모든 일이 내게 일어났어 Everything Happens To Me》와 같은 노래에서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1988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머물다가 이층 창문에서 떨어졌다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직전에 브루스 웨버(Bruce Weber)의 《잊혀져 버리자 Let's Get Lost》라는 계시적인 다큐멘터리에도 출현했다.
1989년 평론가들에 선정에 의해 다운비트 명예의 전당에 봉정되었다. 자서전 《날개가 있는 듯이 As Though I Had Wings》의 앞부분은 그의 사후인 1997년에 나타났다.
서정적인 즉흥연주자로서, 마치 흘러가는 음에 입맞춤하듯 하는 부드러운 연주로 유명했으며, 일찍부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산뜻하고 느긋한 연주방법을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독특하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1946년 어쨌든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백인 미소년 쳇 베이커는 잠시 동안이나마 버드(Bird:찰리 파커의 애칭)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베이커가 버드로부터 얼마만큼 많은 음악적 감화를 받았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무절제한 생활 방식 만큼은 톡톡히 이어받은 모양이다. 그는 그 이후 자신의 음악 인생을 처절한 방랑 속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 방식이야 어떻든 간에, 쳇 베이커는 철저하게 마일즈 데이비스(MilesDavis)를 추종했던 트럼페터였다. 열정적인 측면보다는 억제되어있는 차분한 스타일. 이러한 베이커의 명성이 결정적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52년도에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이 시도했던 유명한 '피아노 없는 (pianoless) 콰르텟'에 참여했던 사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독보적인 바리톤 색소포니스트이면서, 뛰어난 작, 편곡자였던 제리 멀리건은 일찌기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악파 생성의 분기점을 이루었던 역사적인 음반 Birth of the cool('49)에서 길 에반스(Gil Evans)와 함께 사운드 형성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연주의 전체 진행에 화성적 근간을 짚어 주는-흔히 콤핑(Comping)이라고 부르는-피아노의 역할이 빠진 멀리건의 콰르텟에서 베이커는 리더와 함께 쿨(cool)파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관악기들의 서로 얽힌 라인들을 선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음색,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 결코 열정을 표출하는 일 없이 항상 억제되어 있는 톤으로 그는 금세 주목받는 연주자가 되었다. 속도에 있어서도 그는 빠른 템포를 연주하는 일이 거의 없고 미디움 템포나 발라드 풍을 선호했다. 그의 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약간은 불안정한 듯한 음정에 콧소리도 조금 섞인 듯한 여리고 가냘픈 목소리로 음을 뽑아낸다. 그가 숭배해마지 않았던 마일즈 데이비스가 절약하는 음, 즉 다시 말해서,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나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식의 '쏟아내는 음의 연속'이 아닌, 꼭 필요한 음만 선택적으로 내는 경제주의를 표방했던 것과 일맥 상통하는 면도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명백한 차이를 보여준다. 마일즈의 경우, 고풍스러운 실내악 같은 사색적 접근을 보여준 반면, 베이커는 연민을 불러 일으킬 만큼 소극적인 분위기를 자 아낸다. 한마디로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시키는 애처로운 남자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고독과 방황으로 점철된 인생항로를 거쳐 태어난 고향을 일찌감치 떠나 이주 한 캘리포니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베이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트럼펫을 익히기 시작했고, 앞서 얘기한 대로 찰리 파커와의 잠깐동안의 만남을 거쳐 입대한 뒤 군악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시절이 그에게 트럼펫이라는 악기에 대한 많은 연습과 훈련의 기간을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제대 후, 일취월장한 실력을 갖추게 된 그는 제리 멀리건의 쿼텟을 통해 유명해진 뒤, 찰리 파커와도 다시 레코딩 하는 등 프로 뮤지션 으로서의 경력을 쌓다가, 이윽고 자신의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가 '53년 경이었다. 이른바 웨스트 코스트 악파의 전성 시대와 맞물리는 시기였다. 이 당시는 또 흑인들이 주도하던 재즈 초창기의 모습이 지나가고, 학교 교육 등을 통해서 정식으로 음악에 대해 공부한 백인들이 청년기에 접어들 무렵이기도 하다. 그들이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은 물론 유럽의 클래식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찌감치 조지 거쉬인(George Gerwshin)이나 폴 화이트맨 (Paul Whiteman)이 시도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흥미를 느끼고 뛰어든 재즈 속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 적인 방법론을 함께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별다른 형식적 특징을 갖지 못한 재즈가 클래식 음악과의 접근을 시도해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빛나는 즉흥 연주의 순간을 생명으로 하는 재즈의 본래적인 의미에 충실해 볼 때, 이들 웨스트 코스트 계열의 음악은 공허한 형식주의에 불과한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은 이 악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러한 논쟁의 중심이 된다. 그러면, 쳇 베이커는 어떤가? 본격적인 리더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그는 방대한 양의 녹음을 남겼다. 그의 음악에서 어떤 특별한 실험적 요소를 발견할 수는 없다. 아니, 정확히 얘기 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그가 그러한 것을 의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애절했고, 외로웠으며, 일면 퇴폐적이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경우가 그랬듯이 대중들은 그의 트럼펫 연주보다 그의 노래를 사랑했으며, My funny valentine은 그의 또 다른 이름처럼 따라다녔다. 자신의 생애를 다큐멘터리로 다룬 영화처럼 쳇 베이커는 길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해서 그는 특정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술, 마약, 여자에 둘러싸여 자신을 내버려 두었으며, 고독과 방황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특히 약물과 관련하여 그는 먼 타향 땅인 이탈리아에서 1년간('60-'61) 옥살이를 하는 등 재즈에의 열정 못지 않은 탐닉을 계속했다. 베이커는 재즈사 속의 어떤 특정 부류로 넣기 힘든 지극히 독자적이고 개인적인 아티스트였다. 본래 구분을 만들어내는 것은 평론가들의 직업(?)일 따름이지 개개의 뮤지션들과는 별 상관 없는 부질없는 짓이 아니겠는가.
'73년 경부터 재기를 시도한 베이커 는 꾸준한 레코딩 활동과 콘서트를 병행하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80년대에 들어서도 이러한 활동은 계속된다. 하지만, '88년의 네덜란드 투어 도중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발생된 비극으로 그는 결국 고독한 방랑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59세였지만, 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적어도 70세는 넘어 보인다. 방황이 건강을 해쳤던 까닭이다. 그의 죽음이 추락사로 결론지어지긴 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는 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그는 더 이상 술을 즐길 수도, 헤로인의 나른한 안락에 취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자신을 스쳐간 여자들 중 누구도 그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지 않았다. 사회가 정한 틀을 철저하게 피해가며 살아버린 그의 생애는 자신의 재즈보다 훨씬 더 즉흥적이었다. 정말이지 쳇 베이커는, 사람의 일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향해, 아무런 당위적 구속이 없는 처절한 즉흥 연주라는 '경우의 수' 하나를 던지고서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쳇 베이커가 처음 두각을 나타내게 된 계기는 물론 그의 트럼펫 연주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곧 그의 노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이를 재빨리 간파한 레코드 회사측에서는 그의 음반에서 노래의 비중을 높이게 되었다. 베이커는 자신의 방랑으로 점철된 음악 인생 만큼이나 레이블을 옮겨 다니면서 많은 녹음을 남겼는데, 유럽의 레이블까지 모두 합치면 일일이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레이블을 아우르고 있다.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베이커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이 사람의 음색과 연주가 아니고는 전달할 수 없는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그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다. 거기에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조작할 필요도 없이 그 자신이 '뭔가 매우 특별한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특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광휘는 한여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소리없이 어둠에 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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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약 남용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추락이 변제의 시간을 넘겨버린 빚처럼 그를 덮친다.
베이커는 제임스 딘을 닮았다.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그 존재의 카리스마나 면모나 파멸성도 아주 유사하다. 그들은 시대의 편린을 탐식하여 얻은 자양분을 온 세계를 향하여 기분 좋게, 거의 하나도 남기지 않고 되뿌렸다. 그러나 제임스 딘과 달리 베이커는 그 시대를 살아남았다. 그것이 쳇 베이커의 비극이었다. 좀 심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70년대에 쳇 베이커가 부활하여 재평가 받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베이커와 그 시대가 정면으로 충돌하듯 격렬하고 선연한 불꽃을 피웠던 50년대 중기, 미국 서해안에서 그의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연주를 가능한한 오래 뇌리에 담아두고 싶다.
쳇 베이커의 초기 명연은 제리 멀리건의 오리지널 쿼텟(Quartet)으로 들을 수 있는데, 그 자신의 쿼텟 연주도 아주 훌륭하다. 이 퍼시픽 레코드사의 10인치 판은 리더작 중에서도 제일 초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 가칠가칠하고 어설플 정도로 청신한 음색과 연주에는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인 러 프리맨의 긴장감 어리면서도 말끔하고 독특한 터치가 베이커의 혼이 자아내는 '올곧음'에 선명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트럼펫 쿼텟에서 그의 연주는 시원스럽고 밝은 표층 아래로 침잠한 고독의 여운을 남긴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 소리는 똑바로 공기를 찌르고,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미련없이 사라진다. 노래는 미처 노래가 되기도 전에, 우리들을 둘러싼 벽에 삼켜진다.
기술적으로 세련된 것은 아니다. 온갖 재주를 피우지도 않는다. 연주는 놀랄만큼 탁 틔여 있다. '저렇게 연주하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소리가 똑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감마저 품게 된다. 소리는 끝없이 청렬하고 감상적이다. 그런 소리에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깊이를 찾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 깊이 없음이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은 우리들이 언젠가 경험한 무엇을 닮았다. 아.주.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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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에게서 느끼는 재즈란 언어는 본능이라고 할까, 아니면 천성적으로 타고난 그만의 재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사가 쳇에게는재즈라는 일상이 환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최영수 / 재즈 평론가
회자 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다. 어차피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 할 때, 별다른 감정 없이 시절 인연이 다해서 저 세상으로 갔다 하면 간단한 논조로 끝나겠지만 쳇 베이커의 사망에 대해서는 상당한 미스테리가 있었고, 아직까지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물론 매년 몇 명씩의 재즈 뮤지션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쳇 베이커의 사망은 그때 당시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우리 나라가 올림픽 준비에 한창 분주했던 88년 ‘5월 13일(금요일) 새벽 3시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 2층 방에서 미국의 유명한 싱어 겸 트럼펫터 쳇 베이커가 창 밖으로 떨어져 죽었다. 추락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 13일자 로이터 통신이 암스테르담 발로 전세계에 알린 간단한 기사였다. 목격자도 역시 없었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리며 팬들에게는 ‘영원한 청춘’의 심볼로 각인되어 왔던 쳇 베이커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히어로로서 혜성같이 나타나 재즈 팬들을 매료시켰던 트럼펫터이자 보컬리스트였는데,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파란 만장의 생애가 그의 음악적 컨셉션에 강하게 용해되어 있는 것 같다. 스마트한 용모와 함께 일약 인기 뮤지션의 반열에 쳇 베이커는 1929년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에 오클라호마주 예일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하이 스쿨 시절에 접어들면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46∼48년에 걸쳐서는 병역 관계로 밀리터리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제대 후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엘카미노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50∼52년에 걸쳐 또다시 군에 입대하여 병역 관계를 마치고 제대한 그는 찰리 파커와의 세션을 거쳐서 제리 멀리건의 제1기 쿼텟 멤버가 되어 활동하게 된다. 53년에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여 릴리컬한 트럼펫 스타일을 과시하면서, 그의 스마트한 용모와 함께 일약 인기 뮤지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59년 후반부터 60년대를 거치면서 그는 마약에 탐닉하여 투옥되는 등, 재즈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도 했었다. 73년 여름, 뉴욕으로 컴백했지만 주로 유럽 각지에서 투어링 콘서트 내지는 레코딩을 했던 그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86년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투어링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일본을 방문하여 대도시 순회 공연을 실시하여 격찬을 받아 또다시 인기를 만회했다. 88년 3월에는 쳇 베이커의 반평생을 영화화하기도 했는데, 「Let’s Get Lost」라는 제목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국내에는 미개봉 영화지만 모노크롬으로 쳇의 불우한 생을 간결한 터치로 영상화하고 있다. 덧붙여 쳇 베이커의 마지막 레코딩은 그의 죽음 직전인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독일 하노버에서 실시한 녹음으로, 여섯 곡은 스트링스와 나머지 여섯 곡은 빅 밴드와의 공연으로 되어 있다. 이 앨범은 독일의 엔야 레이블을 통해 ‘My Favorite Songs’로 타이틀을 정하고 ‘The Last Great Concert’라는 부제로 발매되었다. 쳇의 앨범들은 이외에도 국내에 많은 양이 수입되어 손쉽게 접할 수 있으나 워낙 다작을 남기고 있어 모두 컬렉션하는 데 적잖은 수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의 대표적인 앨범을 소개하자면 퍼시픽 재즈(Pacific jazz)에서 발표한「쳇 베이커 싱즈」와「싱즈 앤드 플레이즈」가 발군이고, CTI 레이블에 남긴「오텀 리브스」그리고 일본 레이블 베이스테이트(Baystate)에서 발매한「싱즈 어게인」, 리버사이드(Riverside)의「쳇 베이커 싱즈」 등이 출중하다. 유니크하며 개성적인, 중성적이면서도 애수 어린 무드 쳇 베이커는 트럼펫뿐만 아니라, 유니크한 보컬을 과시했던 뮤지션으로, 전술한 그의 대표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웨스트 코스트의 마일즈 데이비스라는 별칭을 항시 달고 다녔다. 특히 그의 트럼펫 연주는 중음대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브라토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 점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생각된다. 그뿐만 아니라 보이스 컬러에서도 일반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와는 달리 차분하고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고 전혀 무리하지 않는 발성으로 오히려 유니섹스한 필링을 깊이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재즈 보컬의 즐거움을 광범위하게 제공하고 있는가 하면, 쳇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 꿈의 무지개를 쫓아간 그런 천진 무구한 면이 있었고, 깊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매력을 주었다. 삶의 미학을 최후까지 지속했던 뮤지션으로서 그의 릴리컬한 연주는 오히려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키게 한다. 필자는 쳇 베이커의 음악보다는 젊은 시절 그의 모습에서 황홀함을 느꼈다. 늘 온화함과 일면의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묘한 뉘앙스를 그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만년의 쳇은 트럼펫터로서의 원숙함에 더하여 보컬리스트로서도 그만이 독특한 개성에 깊은 맛을 가미하여 새로운 매력을 팬들 앞에 과시했다. 다시 말해 보컬리스트로서의 쳇의 노래는 중성적이면서도 앙뉘(ennui)한 특별한 무드로 포장되었다. 지극히 유니크하며 개성적인 것이다. 그러한 독자적인 스타일은 과거에 있어서 퇴폐적이랄까, 게이의 푸념 같은 노래라는 평판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가 부른 노래의 본질적인 매력이 다시금 재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전문적인 보컬리스트에 비하면 목소리가 탁월하지 않았던 쳇의 단점을 독자적인 개성으로 커버하게 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던 것이다. 쳇이 부른 레퍼터리는 어느 것이나 스탠더드한 곡이지만 그런 스탠더드 곡으로 제시하고 있는 독자의 해석과 표현은 귀에 익숙한 넘버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결국 쳇 베이커의 보컬은 그의 트럼팻 연주와 같이 지극히 재지(Jazzy)하고 매력 넘치는 것이며, 훌륭한 재즈 보컬로서의 스타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신선한 것임에 틀림없다.
천여 곡 넘는 곡 가운데필청 명반은「쳇 베이커 싱즈」 여기에서 쳇 베이커의 필청 명반「쳇 베이커 싱즈」(Pacific Jazz)에 얽힌 얘기를 통하여 이 음반의 가치를 알아보자. 이 앨범은 쳇의 최고 걸작임과 동시에 재즈 보컬을 얘기할 때 절대 빠져서는 안될 명작이며, 화제를 많이 불러일으킨 앨범이다. 1954, 1956년의 녹음으로 된 이 작품은 56년 처음으로 발매되었을 때에는 모노럴 녹음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 후 1962년에 스테레오화되어 재발매되었지만, 이때는 기타에 조 패스를 기용하여 오버더빙을 했었다. 결국 오리지널인 모노럴 테입은 그 시점에서 말소되고 말았다는 통설이 지배적이었다. 오리지널 모노럴 레코드는 2회 정도밖에 발매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5년 가을 퍼시픽 재즈의 일본측 라이센시인 도시바-EMI 레코드사의 창고에서 오리지널 모노럴 테입의 복사본(Duplication)이 발견되었는데, 그 해 11월에 동사로부터 발매된 이 앨범은 많은 재즈 팬을 놀라게 했다. 물론 이것이 CD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88년에 들어서 또다시 전혀 다른 오리지널 모노럴 테입이 발견되었다. 이전에 복각된 테입보다도 오히려 음질이 좋은 테입으로, 이것을 CD화한 것이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음반이다. 특히 일본 버전의 음질이 더 우수해 본토인 미국으로 역수출하는 아이러니는 쳇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데 일조를 했다. 일세를 풍미했다고 하지만 쳇이 보여준 말년의 초라함과 패배주의만을 기억하는 팬들도 많다. 그럼에도 죽기 직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 삶이란 따분할 뿐이다.”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 그의 현학적인 대답은 범인으로서는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쳇에게서 느끼는 재즈란 언어는 본능이라고 할까, 아니면 천성적으로 타고난 그만의 재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사가 쳇에게는 재즈라는 일상이 환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녹음에 참여하면서 솔로로서 연주한 것과 세션 맨으로 참가한 것을 줄잡아 천여 곡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이저, 마이너를 괘념치 않고 재즈가 필요한 곳이나, 재즈가 있는 곳이면 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왜? 그에게 있어 재즈는 삶 그 자체였기에 쳇은 재즈와 더불어 다사 다난한 인생 행로에서 끝내 천재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 땅 암스테르담의 초라한 호텔에서 투신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 역시 그의 예정된 하나의 삶의 수순이었는지 모르겠다.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천국행을 탔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쳇 베이커여 영원하라. 여기에 너의 노래가 있다
Angel Eyes
■ ■ Chet Baker & Art Pepper
'Playboys'
(1956, 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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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For Minors Only
Chet Baker - Trumpet
Art Pepper - Alto Saxophone
Lawrence Marable - Drums
Stan Levey - Drums
Phil Urso - Tenor Saxophone
Richie Kamuca - Tenor Saxophone
Carl Perkins - Piano
Pete Jolly - Piano
Curtis Counce - Bass
Leroy Vinnegar - Bass
02. Minor-Yours
06. For Miles and Miles
Track List
1. For Minors Only (J.Heath) 2. Minor-Yours (A.Pepper) 3. Resonant Emotions (J.Heath) 4. Tynan Tyme (A.Pepper) 5. Picture of Heath (J.Heath) 6. For Miles and Miles (J.Heath) 7. C.T.A. (J.Heath) 8. Tynan Time (Bonus Track) 9. Minor Yours (Bonus Track) 10. The Route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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