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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우리 인기도 만만치 않았어요"
[오마이뉴스 2005-12-19 15: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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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언스의 대표곡 '편지' |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보낸다. 1973년 5월에 발표된 포크 듀오 '어니언스'의 대표곡 '편지'의 노랫말이다. 중학교 3학년(1976년) 봄 소풍 때 나는 선생님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 귀여움(?)을 담뿍 받은 적이 있다. 옛날 가요를 좋아하던 아버지도 약주 한 잔 하신 날은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변성기야 지났지만 덜 익은 목소리로 "멍 뚫린 내 가슴에"하고 콧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용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 청소년기 감성의 한 자락을 적셨던 노래, 편지와 어니언스. 어니언스는 오는 23일과 24일,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송년 디너콘서트를 연다. 가끔 각종 무대에서 둘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어니언스란 이름으로 콘서트를 갖기는 실로 25년만이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가슴노리를 헤집던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연습실에서 그들을 만나봤다. 첫 인상은,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청년시절 그대로, 낭만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수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순간 "아, 내가 오히려 나이를 먹고 있구나!"하는 자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그들의 순전한 젊은 빛깔을 발견하는 일은 한편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어니언스'의 성탄인사 받으세요"
임창제 : "이수영씨가 요즘 말로 하면 꽃미남이라 여성 팬들을 다 몰고 다녔지요. 솔직히 좀…, 그때는 그랬어요(웃음)."
이수영 : "반대로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제씨를 더 쳐주는 얘기들이 더러 있어서 저도 그땐 좀…, 그랬지요(웃음)."
70년대 중반, 그들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실례로 1974년 5월 4일,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던 그들의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서 정문 밖까지 운집한 팬들 때문에 혼란이 빚어질 정도였고 1시간이나 공연이 지연되기도 했다. DJ 이종환씨가 사회를 맡았고 김정호,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등, 당대 최고라 할 포크 가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우정출연해 성황을 이루었다.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인 임창제(55)씨의 음악적 재능은 동경음대를 나온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라디오를 통해 미8군 방송을 접했던 그는 '스키터 데이비스(대표곡 The End Of The World)'에게 심취하면서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미8군 무대에 섰던 스승 이상일씨로부터 기타를 배운 그는 우이동 산속에서 요절가수 김정호(데뷔곡 '이름 모를 소녀')씨와 함께 피나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가 이수영(55)씨를 만난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다. 음악적인 한계와 몸까지 아파 쉬고 있던 그는 친구 소개로 혼성트리오 '히치하이커'의 리더였던 이수영씨를 만났다. 어니언스는 처음에 여성 멤버 윤혜영씨 포함 세 명이었다. 72년 1월, 방송 PD였던 정홍택씨가 지어준 이름 어니언스로 그들은 그해 'TBC신인가요제'에 출전,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여성 멤버와 결별하고 남성 듀오로 재결성된 어니언스는 김정호씨가 만들어 준 노래 '사랑의 진실'로 당시 최고 TV 오락 프로그램이었던 '쇼쇼쇼' 무대를 통해 정식 데뷔를 했다. 그 다음부터 어니언스는 순풍에 돛 단 듯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인기 절정에서 난데없는 폭풍을 만나게 될 줄이야….
1975년, 세계 대중문화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이른바, '가요정화운동'에 임창제씨가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어니언스는 파경을 맞게 되었다. 가요정화운동은, 포크 음악의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과 내재된 저항 정신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군사정권이 연출해 낸 멋들어진(?) 작품이었다. 그 이후 각자의 길을 걷다가 1981년, TBC에서 기획한 40분 특집방송에 출연한 게 어니언스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앞서 살핀 대로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종종 함께 무대에 서며 우정을 과시했던 그들이 다시 어니언스라는 이름으로 여는 정식 콘서트.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70년대를 회상하고픈, 이미 40~50대가 된 열성 팬들은 기대와 함께 성원을 보내고 있다. 추억은 윤색되기도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도 우리는 복 많은 가수랍니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자장면부터 시켰다. 30여 년 전부터, 연습실에 도착하면 자장면부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야 노래할 뱃심이 생긴단다. 왜 하필 자장면이냐는 우매한 질문에 임창제씨는 "싸고 맛있잖아요"하며 천진한 웃음을 보여준다.
임창제 : "근황이요? 그냥 뭐, 서초구 잠원동에서 어니언스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사실은 아내가 하는 거죠(웃음). 저는 주로 통기타 하나 들고 지금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지방을 돌며 작은 콘서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참 복 많은 가수예요. 30여 년이 지나도록 기억해주는 팬이 있으니까요."
이수영 : "건설업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잘 아실 테고…, 서초동에 사무실이 있는데 지하에 역시 어니언스라는 이름으로 와인바를 열었어요. 거기서 가끔 노래도 부르고요. 임창제씨 말대로 우리가 참 복도 많다, 뭐 그런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추억 속에만 머무는 가수들이 아니다. 임창제씨는 지난 2001년에 두 장짜리 앨범 '세월 가는 소리'를 발표했고 이수영씨 역시 2004년에 두 장짜리로 '소중한 기억들'을 발표했다. 과거 인기곡만 모아놓은 앨범이 아니라 신곡들을 포함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현재진행형 가수다.
임창제씨는 일이 끝나면 아내와 함께 또는 동료들이랑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 한 잔 나누는 기쁨을 즐긴단다. 가요계에서도 소문난 애주가인 그는 건강을 위해 축구로 몸을 다지고 있다. 이수영씨는 원래 술을 잘 못했는데 건설업을 하다 보니 주량이 늘어 걱정이란다. 낚시를 특히 좋아하는데 시간 내기 힘든 게 가장 안타깝다고. 30여 년 넘게 식지 않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비결,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수영 : "비결이랄 게 뭐 있나요? 요즘 젊은 가수들은 어떻게든 빨리 뜨려고만 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 고뇌에 찬 끝에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음악이 아니면 생명력이 길지 않습니다. 물론 저희들 젊을 때도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세태 탓인지 요즘은 훨씬 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임창제 : "가수는 공인이에요. 공인의 의미는, 팬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가 더 이상 가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식에서 출발합니다. 함께 나이 들며 추억을 공유하고, 찬란했던 팬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그게 바로 가수의 몫입니다. 요즘 음악 특히, 랩이니 힙합이니 영어가사니, 다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50대가 되었을 때 노래방 가서 그런 노래들을 다시 부를 수 있을까요? 애틋한 추억에 젖어서?"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이수영씨. 그리고 1남 1녀를 둔 임창제씨. 어느덧 머리 희끗한 아버지가 된 그들이 엄동설한에 땀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잔잔한 감흥이 밀려온다. 세상을 젊게 산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가장 좋아하는 일 속에 파묻혀 있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노래 '작은 새', '사랑의 진실', '하얀 미소', '누나', '편지', '저 별과 달은', '초저녁별', '외기러기' 등은 변함없이 팬들의 가슴 속에, 그리고 내 가슴 깊은 곳에 애잔한 기억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세월은 추억과 함께 흘러 채색되어지고…. 덧없는 인생사라지만 기억할 수 있기에, 돌아볼 수 있기에, 광휘를 뽐내던 젊음을 다시 끄집어내 시린 가슴 적실 수 있기에, 세상의 모든 노래는 위대하다. 그 언저리에 어니언스가 있다.
/이동환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2008.0523 Empas에서 이사하면서 Rebuilding -Manijo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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