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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포천시 쪽의 고갯마루 시장풍경
 
"어, 이런 곳에 웬 시장이야?"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가 되는 광덕고개에 올랐을 때였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주변이 온통 시장바닥이다. 백운산과 광덕산이 능선으로 이어지는 해발 660미터가 넘는 높은 고갯길이다.

고갯길 정상 왼편으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검은 곰 한 마리가 강원도 쪽으로 약간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강원도라는 도계 표시를 한 것이다.

그 앞쪽으로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공터는 백운산 등산로 입구가 되는 곳이기도 한데 이 일대가 온통 시장바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주변에 인구가 많은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해발 1000미터 내외의 높은 산들과 깊은 골짜기들이 펼쳐져 있어서 한없이 한적하여 고즈넉하기만 할 것 같은 고갯마루에 시끌벅적 와글와글한 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이 시장 때문에 주변에 주차한 차들도 많다. 등산객들이 아니었다. 승용차를 타고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었다.
 


"중국산이라니요?" 펄쩍 뛰는 상인

 
▲ 경기도와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접경인 고갯마루에 서 있는 반달곰상
"어쩌다 이곳을 지나칠 때면 꼭 몇 가지씩의 물건을 사곤 합니다."

감자가 담긴 비닐봉투를 손에 들고 한 무더기의 더덕을 흥정하던 남자의 말이다. 서울 용산에 산다는 40대의 이 남자는 이곳에서 파는 농산물의 품질이 믿을만하고 좋다고 말했다.

시장은 제법 점포 형태를 갖춘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파라솔을 펴놓고 앉은 노점상들이다. 파는 물건들도 산나물들과 함께 감자와 더덕, 옥수수등 대부분 농산물들이다.

더덕을 파는 아주머니는 포천에서 왔다고 한다. 이 더덕 혹시 중국산 아니냐고 물으니 펄쩍 뛴다. 모두 이 근처의 밭에서 재배한 것들이지만 산에서 직접 채취한 자연산도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이른 아침 인근의 포천과 화천 등지의 산골에서 농산물을 싣고 올라온 농민들이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백운산과 광덕산을 찾는 등산객과 백운계곡과 사창리쪽 계곡을 찾는 피서객들이 많은 여름에 근처에 사는 농민들이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온 농산물을 팔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할머니들과 아주머니 몇 명밖에 없었는데. 모두들 먹고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지요."

10여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이다. 그런데 장사가 쏠쏠하게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자 자꾸 불어났다는 것이다. 물건도 다양해지고 장사꾼이 많아지는 만큼 손님들도 늘어나더라는 얘기다. 지금은 인근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장사꾼들도 더러 섞여있다고 한다.


 
▲ 과일과 잡화가게 풍경
 
이날도 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 몇이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이들은 저 아래 백운계곡에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왔는데 이곳 고갯마루 시장 소식을 듣고 올라왔다고 했다.

"이곳 아주 좋은데요. 이렇게 높은 고갯마루에 이런 시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높은 곳에 있으니 '하늘시장'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하늘시장'이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 백운산 등산로 입구 쪽의 고갯마루 시장 풍경
 
하늘시장. 참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옆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여긴 장날이 따로 없고 거의 매일 이렇게 장이 서지만 따로 이름은 없다고 한다.

어른의 팔뚝보다도 훨씬 굵은 칡뿌리를 잔뜩 쌓아 놓고 즙을 내어 파는 곳도 있고 각종 과일과 야채들을 파는 가게도 보인다. 한약재들과 잡화를 파는 가게도 있고 상당히 넓은 음식점도 있었다.

통감자 구이와 수수부꾸미를 먹으며 백운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허름한 가게의 창가에 앉으니 30도가 넘는 기온도 아랑곳없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온 바람이 마냥 시원하기만 하다. 에어컨 같은 것은 아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 아래, 우리들이 차를 몰고 올라온 구불구불한 광덕고갯길은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옛날에는 이 고갯길이 좁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아서 차를 타고 넘기가 상당히 위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군사단장이 고갯길을 넘을 때 운전병이 졸까봐 한 굽이 돌 때마다 캐러멜을 한 개씩 주었다고 해서 일명 '캐러멜 고개'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또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고개의 생김새가 멀리서 바라보면 낙타의 등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미군들은 낙타라는 '캐멀(Camel)'이라 불렀단다. 그런데 발음이 비슷한 캐러멜로 변하였다는 일화도 전한다.

▲ 맛이 그만이었던 수수부꾸미와 통감자구이
 
고개를 넘어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하늘시장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더덕 한 무더기를 사가는 사람, 찐 옥수수를 사들고 가는 사람. 그 유명한 이동막걸리 한병과 감자떡을 사들고 차에 오르는 사람….

줄기줄기 높은 산들이 이어진 해발 660미터가 넘는 높은 고갯마루에서 어느 시골의 5일장처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흥정이 이루어지고, 순박한 웃음을 주고받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잠깐 서서 지켜보는 사이에도 오고가는 차량들이 잠깐잠깐 정차하여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고, 사들고 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고갯마루 하늘시장은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은 편이었다. "또 오세요. 우리 집 물건은 정말 믿어도 돼요." 순박해 보이는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으며 우리들도 몇 가지 우리농산물을 사들고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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